생각2015. 12. 27. 13:28
'술에 많이 취한 여자는 어떠한 짓을 당해도 상관없다, 본인이 자초한 것.'
- 어젯밤 웹사이트에서 본 댓글 한 조각
'나이들수록 여자들은 경쟁력이 좀 떨어지지 않나요?'
- 내가 내년에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하자, 그 날 처음 본 사람이 던진 한 줄

익명이든, 실명이든 관계없이. 인터넷이든, 오프라인이든 관계없이. 본인들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무례한지 고려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권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또한 그 권력이라는 게 오로지 태어날 때 주어진 성별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는 게 또 얼마나 우스운가.

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하는데도, 나에게 '페미니스트' 라는 프레임이 씌워질까봐 얼마나 전전긍긍해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비겁한 방관자다. 수많은 폭력 앞에서도 나에게 그 폭력이 향해지지 않았다는 근거를 찾으며 살 길을 모색했다.
무뎌져야 이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농담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나이/경험과 관계 없이 여성을 바라보는 프레임 앞에서는 대동단결되는 회식 자리에서, 심지어 동등하게 일 하는 미팅 자리에서, 끊임없이 나를 여성이 아닌 또 다른 성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겪은 사실들을 쓰는 이 글 조차 몇 번이고 썼다 지운다. 나처럼 일 욕심이 있어보이고,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어떻게 공격당하고 어떻게 스러져갔는지 수없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도, 단체에서 만났던 언니들도, 이제는 더 이상 관련된 이야기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뿐인데, '너 페미니스트지? 꼴페미들 진짜.. 까칠한 년들' 하는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랬다.
몇 줄이고 더 쓰다가, 지운다.
언제쯤 다 토해낼 수 있을까. 그랬다.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