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부터 5월 27일까지.. 내 하루의 거의 70%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꿈에서도 나왔던.. 청춘페스티벌이 끝났다.
조직 내에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로 인해 나의 위치에도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아니. 인지하기 위해서 청춘페스티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치 상처를 봉합하듯 팀이 꾸려졌고, 서로 약간은 힘들게 업무를 분담했다.
그 시기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걱정과 압박을 눈으로 볼 수 있게 가시화한다면 .. 아마도 엄청나게 어두운 구름으로 가득찬 밀폐된 방을 떠올릴 수 있겠다. 나는 갇힌 느낌이었고, 도무지 이 곳을 나갈 방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그 구름들은 내 눈을 가릴테고 그럼 나는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방은 넓었고. 나는 앞으로, 앞으로 가다보니 조금씩 계단도 찾고. 유리창문도 찾아서 열고, 불 꺼진 냉장고에서 미지근한 물도 꺼내 마시다가 .. 넘어지고. 더 이상 무서워서 앞으로 가고 싶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내'가 행사를 리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찾아내자면 수십가지도 더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행사 현장에서 단순한 자원봉사자 이상으로 일해본 적이 없었으며, 연출 관련된 업무는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었고. 그동안 관심 자체를 떠나 지식도 없었고, 조직 외부의 다수와 협업하여 완성된 컨텐츠를 만들어내려고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나이는 너무 어렸고, 가격을 낮추는 등의 협상은 너무나 쥐약이라 가급적 피해왔었다. 이미 에너지는 고갈되어 있었고, 아이디어를 잘 생각해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난 긍정적인 성향도 아니고, 오히려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100명 200명 오는 것도 아니고 몇 천명에 가까운 사람을 모아야했고, 그리고 또 그 사람들에게 '최악'은 아닌 평균 정도 수준의 행사를 만들어주어야 했다. 다른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자리에 있어야만 했고, 그런데 내가 앉아있는 그 나의 자리는 정말정말 높아서 ..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내 스스로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점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뭘 믿고 나아가야 할 지를 모르겠었다.
그저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바보같지만 음향 기기 리스트를 보면서 해당 기기의 이미지를 다 찾아서 PPT 파일로 만들었다. 단막 트러스가 무엇인지, 흔히 돌돌이라고 불리는 리드선은 대체 왜 필요한 건지 하나도 모르겠으면 인터넷을 찾고 주위에 물었다. 이 지경이면서도 행사를 준비하겠다는 내가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아저씨들 만나기 무서웠다.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을 수십번 했다. 누군가 대신 이 자리에 서줬으면, 나는 그 뒤에 서서 배우고 나서 적어도 이년 쯤 후에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수천번 했다.
그 무서움이 극에 달했을 때 ..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땅에 떨어졌을 때.. 더 이상 뭘 믿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마음 속에서 아무리 책임감을 긁어내어도 쥐톨 하나 손에 잡히지 않을 때 ..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입 밖에 내밀었다.
엄청나게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리더로서 절대 꺼내지 말았어야 하는 이야기를. 행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꺼내어놓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나 혼자만의 방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밀폐된 방에서 미지근하나마 물도 꺼내어먹고, 작긴 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유리창문을 열고, 내려가는 계단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은 내가 나 혼자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 때가 다 되서야 알았다.
까만 구름에 가려서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내 손을 잡아주고 있는 사람도. 먼 곳에서 가져오느라 식어버린 물이나마 넣어놓는 사람도.
열심히 유리창문을 넓히는 사람도, 계단을 만드는 사람도 보질 못하고..
그리고 그 방은 나의 방이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지탱하고 있었고, 또 넓히고 있었던 우리의 집과 같았다.
정말 유치하지만.. 그리고 행사가 끝난 이 순간에야 느끼지만 ..
내가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수십가지나 되고, 그 이유들을 모두 따져보면 결국 행사는 만들어질 수 없겠지만 ..
'우리'가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는 거였다.
나는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었던 거였다.
솔직히 행사가 끝나는 순간, 클로징을 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그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고 기쁨으로 충만한 그런 영화같은 감동은 내게 없었다.
내 눈엔 아쉬운 점이 수없이 가득했고 또 초기에 세운 목표치에 해당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초라한 성과를 낸 행사였다.
그래서 끝나는 순간이 또다른 고통의 시작일 수 밖에 없는 행사였다.
내가 또 다시 행사를 할 수 있을 지 조차 모르겠다.
그렇지만 청춘페스티벌을 준비하며 내가 얻은 수많은 업무적인 스킬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드디어 전화업무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떨쳐냈다는 그런 소소한 기쁨들 .. 보다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될 생각은.
나는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막연히 긍정적인 확신이 아니고. 대책없는 자신감의 발현도 아니다.
이런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는 엄청난 전제조건들과 수없이 많은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우리의 행사가, 끝났다.
아마도 다시 없을 것이다. 처음이어서 더 힘들었고, 더 영롱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석처럼 아껴두어야 한다.
유일무이한 우리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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