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인지 선택과 소비의 경계가 흐려져간다는 걸 느낀다.
서랍장을 사야겠다, 라고 필요를 느껴서 사겠다는 결정을 한 후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서랍장을 보고선 '머플러를 넣어두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구매하는 식이다.
무언가가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산다는 행위 자체를 하고 싶어서 그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물욕 자체가 크지 않고, 무언가를 모으는 것도 계속해서 꾸며나가는 것에도 취미가 없던 내가 이렇게 과소비를 한다.
수많은 심리학책이나 마케팅 책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사실 돈을 써서 소비할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때 가장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실감나고, 이 물건을 삼으로써 내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사실은 좁아터진 방 한칸에 아무런 쓸모없는 물건이 늘어나는 것 뿐이다.
오히려 소비하기 이전보다도 더, 덜 떨어진 인간이 된 셈이다.
허무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 허무함을 메꿔보려 물건을 산다.
아니면 그 허무함을 채워보려 맛있는 걸 먹거나,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점점 더 비어가는 걸 느낀다.
내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 이 세상은 어떤 구조로 돌아가고 있을까, 저 식당의 뒤에는 어떠한 논리가 있을지, 그리고 저 행사를 만들기까지 무슨 노력을 했으며 과연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 사람은 왜 그런 생각을 했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수많은 궁금증들. 그 궁금증들을 풀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대화를 했다.
그런 순간들이 즐겁거나 행복하다기보다도 그냥 그럴 때 내가 살아있음을 정말 자연스럽게 느꼈다.
'내'가 궁금해했고, '내'가 답을 찾아보는 순간들이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집단에 스며들고자 하고, 남들이 그건 아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놓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내 의견을 바꾸거나,
급기야는 아예 생각 자체를 멈춰버린다.
나는 아무 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내 생각 자체가 없으니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저 yes or no 이거나 결론이 있는 논설문 같은 이야기나 할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궁금해하며 이어나가던 대화는 더 이상 없고
그저 모래가 파도에 흘러가듯 흘러가버리는 이야기들이 남았을 뿐.
어느 시점 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글 쓰기를 그만둔 때부터였는지, 아니면 이 상태에 편안함을 느낀 때부터였는지.
물어보고 대답하고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내가 까칠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아니면 허세부리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그것이 내가 삶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던 방법이었다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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