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받은 모든 것2014. 2. 16. 11:55


분명히, 대림미술관에 가서 그렇게 재미있다는 청춘 사진전을 보려고 했는데

토요일 오후 3시였던 탓인지 사람들이 미술관 밖으로도 100명은 넘게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덕수궁 미술관으로 향했다.


한국 근현대사 미술 작품... 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사실 미술 교과서에서 생각나는 거라곤 딱 한 작품뿐인 이중섭의 <소>정도 보고 나와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다 보고 나와보니 소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이인성 <해당화>



제일 먼저 마음을 잡아끈 것은 해당화라는 작품이었다.

모든 것이 따뜻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가운데 소녀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소녀들의 옷과 해당화는 정말 동양스러운데, 전체적인 색깔이나 형태는 서양스러운 느낌이 난다. 내가 뭘 알겠느냐만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정면에 있는 소녀에게서 느낀 것은 슬픈 느낌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공간에 있으니 행복할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슬퍼보인다.


이인성은 '향토적 서정주의'를 완성한 화가로 불렸다고 한다. 

쉽게 풀어보면 당시 서구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에 영감을 받고 그 표현 기법들을 사용하되

배경이나 소재를 한국적 토속성을 지닌 대상들을 사용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붉은 색조로 잔뜩 강렬하게 그려낸 다른 작품들이 많았지만, 난 해당화 하나만 마음에 들었다. 

특히 해당화의 경우, 사람들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해방을 기다리는 꽃'으로 당시에 많이 이용되었고

이 작품의 경우에도 소녀가 해방을 기다리고 있다는 해석이 달려있는 듯 했다.


내가 느낀 슬픔이 과연 해방을 기다리던 소녀의 마음이었을지,

아니면 나의 불안한 마음을 투영한 건지는 이인성 화가만이 알겠지. 분명히 내 감정을 묘사하고 있는 건데도 더 쓰면 오글거릴 것 같아..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가지>


정작 이 작품이 거기 전시 되어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다만 내가 김환기 화가에 대한 느낌으로 '색감'이라고 적어놨기에 찾아보니.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김환기 작품에서 마음에 드는 점으로 색감을 꼽고 있는 듯 했다.

파스텔톤이고, 우리가 보통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파란색을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한다.

한참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게 될 만큼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도, 호감간다. 

그림을 상대로 호감간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사실 나처럼 사람들이 색감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 작품들은 김환기가 추상주의를 어느 정도 완성한 이후의 작품들이었다.


원래 초반에는 이 <종달새 노래할 때> 라는 작품처럼 서구의 입체주의를 이용해 자신만의 추상주의 화풍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이 과정을 거쳐 60년대에 들어와서 동글동글한 항아리, 매화와 같은 한국적인 소재들을 푸른 색감으로 나타내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60년대 후반에는 아예 점묘 등의 추상주의 작품들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추상주의 화풍을 완성시킨다. 

그림을 찾아서 넣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김환기 화가는 알 수록 더 흥미로워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동양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가장 동양스러운 그림이 가장 세계적인 그림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한 내용이 기사나 전시회에서 많이 이용되던데..


사실 1950년~1960년대 우리나라 화가들이 느꼈던 딜레마가 그들의 작품 속에서 느껴진다.

서구의 화풍에서 영감을 얻지만, 한국의 그림이라는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고민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동양적인 소재를 후기 인상주의 식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하거나

아예 모든 형태를 다 분리해버린 상태에서 동양적인 색감을 살리거나.. 하는 고민들이 느껴진다.

그래서 전시회는 1920년 ~ 1970년이라는 시대의 작품들을 모두 다루지만,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건 해방 이후 작품들이다.


어렵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작품과 좋아하는 작가들을 조금씩 조금씩 공부하고 늘려나가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겠지.

다만 나도 미술에 있어서 무식하다보니까, 어려운 개념어들로 작가나 작품들을 해석한 글들로 공부하게 되고 또 그 개념어들로 쓸 수 밖에 없다는 게 좌절.. 나만의 순수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려나;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