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U2010. 5. 17. 12:49

 웹사이트에 가입하고,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하는 공간이 있으면 언제부턴가 '주저앉아있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열정, 도전, 목표를 찾고있다, 꿈, 무엇무엇에 관심이 있다고 작성해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 그냥 단 한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주저앉아있는 중' 
 네이트온을 하든, 트위터를 하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를 뺀 세상이 힘차게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그 속에서 나 혼자만 도태되어있고, 나는 언제나 패배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니 얼굴 보기가 대통령 얼굴 보기보다 더 어렵다고 할 정도로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아리,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단체모임, 각종 행사 .. 모두 의미있는 일들이었고 힘겹게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면서도 마음속은 언제나 공허했습니다. 나는 분명 움직이고 있는데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은 나보다 더 빠르게 열정적으로 움직였고 결국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나는 멈춰있는거나 다름없었습니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깊게. 누구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열정적이고 싶고 한 편으론 나보다 잘난 사람을 계속해서 찾아내며 자신과 비교하고 절망했습니다. 하고있는 일에 몰입하기보다는 하고 있는 일을 다른 누군가의 일과 비교하며 패배감에 젖었고 투덜거림을 쏟아내는 시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열정적으로 산다는 걸 증명해보이고 싶었고 니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니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내가 옳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얽힌다는 게 귀찮고 지겨웠습니다. 연대라는 단어의 의미 조차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 큰 동아리 임원을 맡고 이런 저런 단체에 다니면서 소진되는 건 당연하겠지요. 연대, 협력, 팀워크, 다 익숙한 단어일 뿐 제가 실천하던 가치는 아니었던겁니다.
 
 그리고 지금의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쉴새없이 달리던 다리는 뻣뻣해졌고, 그나마 따스함을 나누어주려던 주변 사람들은 제가 쌓은 장벽과 벌려놓은 거리에 기겁을 하고 스쳐지나갔고, 줏어들은 정보와 마음속에 담아두고 풀어낸 적 없는 가치들이 죽처럼 뒤죽박죽 섞인 끝에 심장이 가동을 멈춘겁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노래속에서나 불러볼법한 문장을 비수처럼 박아넣고 그대로 정지해버렸습니다. 온통 모순에 거짓덩어리로 치덕치덕 바른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왜 쟤는 나보다 잘났지, 왜 쟤는 나보다 말을 더 잘하지, 왜 쟤는 나보다 더 착해, 나보다 더 좋은 일을 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바꿔나가는데 나는 왜 나 혼자만 이렇게 남았지. 미움은 자신을 갉아먹고 눈을 가리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미워했습니다. 미움만이 제게 남은 에너지였거든요. 자포자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움에너지로 연명했습니다. 에이, 저 놈들 저래봤자 금방 포기할걸? 쟤네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게 아닐거야.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어딨어? 돈도 못벌고, 일도 못하고, 금방 망하겠지. 의외로 미움 에너지는 꽤 오래갔습니다. 세상엔 미워할 사람들이 많았고, 조금 더 그럴싸하게 투덜거리면 동조해주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영혼이 질척거리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미움에너지로 연명하던 제게 한결같이 따뜻한 사랑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괜찮다고, 잘할 수 있을거라고, 멈춰도 괜찮다고,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나는 잘하고 있다고. 지금은 조금 지쳤을 뿐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힘이 생길거라고 다독여주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잘나간다고 미워하면 그런 나를 비난하기보다 말없이 끄덕이고, 토닥여주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며 제 스스로의 영혼을 거울에 비춰보게되었습니다. 
 오래전에 가동을 멈춘 심장때문에 영혼이 녹슨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검댕을 묻히고 더러운 시궁창에서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오물을 던져서 더럽게 만들어버리고, 나와 똑같다면서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건 미움밖에 없는 초라한 아이. 멀쩡한 팔다리, 조금의 따뜻함만 있어도 뛸 수 있는 심장을 버려버린채 당장 눈 앞의 세계만 바라볼 줄 아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게 저였습니다.

 비로소 그 때가 되서야 스스로가 주저앉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무서웠기때문에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었죠. 사회가 날 버릴까봐,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봐, 아무것도 안하고 '잉여인간'으로 만족하며 살아갈까봐,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믿음이 없어 놓아버렸던 것이지요. 언제나 열정적으로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살지 않으면 도태될까봐 겁에 질려 있었던겁니다. 사실 멈추어 쉬지 않으면 걸어나갈 수 없는 게 인간인데. 에너지라는 건 충전하지 않으면 다 떨어져버리는 것인데.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첫 번째 걸음.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는 나 자신을 응원해주고 믿어줄 거라는 신념의 실현. 그게 저한테는 '주저앉아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조각의 용기였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데 일관적일 수 없듯이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럴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나의 삶을 내가 통제하고 행복으로 가득차게 만들기 위해서는 천천히 걸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달릴때는 물론 달려야죠. 하지만 멈춰있을때는 철저히 그 시간에 집중해야합니다. 

 행복하게 살고싶습니다.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