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U2010. 6. 8. 16:20

 제가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특성상, 등기소와 세무서, 공증실, 구청을 매우 들락날락 거리게 됩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지 몇 주 후.. 제일 먼저 깨닫게 된 것은, '어떤 일이든 관공서가 개입되면 늦어진다.' 이른 시간에 찾아가더라도 무슨 문제가 발생할 지 알 수 없으며, 일이 언제 완료될 지 추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리 준비를 완벽하게 해갔다고 해도 현장에 도착해서 막상 민원 접수를 하다보면 여기저기 빈 틈이 발생하게 되지요.
 스트레스를 무진장 받았습니다. 당연하죠. 전 세상에 태어나서 '야무지게 생겼다, 똘망져 보인다'는 첫인상을 이틀 이상 유지해본 적이 없습니다. 엄청나게 덜렁거리고 물건 잃어버리는 건 대다수에 가끔 집 전화번호도 헷갈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관공서에서 무언가를 신청하고 처리하고 그 일을 완료시킨다는 것은 정말 그 어떤 스트레스에도 비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헷갈리고, 전화를 해봐도 대체 뭘 준비하고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지 헷갈리는 게 각종 민원 접수 신청이거든요. 전화했을 때는 없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가서 신청서를 쓰다 보니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사람 환장하는 일이죠. 후딱 잘 해내는 사람들도 많더만 대체 왜! 나의 손은 나의 머리를 따라오지 못하나! 기껏 사무실 임원분들 번거롭게 괴롭혀서 얻어낸 인감증명서 등본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가 'XX 가져오셔야 되요' 한 마디에 허탕치고 사무실에 돌아가는 길 .. 아 아버님은 이래서 그 날 소주를 그리도 드셨누나.. 하는 생각을 하지요. 
 신규 법인 설립, 대표이사 변경, 사업자 등록증 신청, 인감카드 관련된 이것저것, 신고세 납부 등등 .. 을 할 줄 알게 된 지금에도 사실 관공서의 일을 한번에 해내는 답은 없습니다. 그냥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한 번 준비물을 훑어 보고, 전화를 2번 정도 해서 이 준비들로 확실한 건지 확인해보고, 필요 없을 것 같아도 요구하는 것들은 기냥 다 싸가는 수밖엔 없는거에요. 게다가 원래 덜렁 거리는 사람이라면 관련 부처에 전화해서 물어볼 때 전화중 녹음 기능을 요긴하게 쓰구요.

 그래도 갖은 실패 끝에 ... 이제는 기본적으로 서류가 하나 만들어질 때 부가적으로 필요한 애들이 대체 누구인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표이사의 인감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대표이사 인감 증명서 필요하고, 법인 인감은 필수에 혹시 모르니 등기부등본도 들고다녀주고, 사업자 등록증 사본도 원본대조필 꼭 찍어서 가지고 있고. 그리고 꼭! 관공서에서 해당 내용 신청서를 쓸 때에는 앞에 있는 설명을 반드시 참조해서.. 행여 단어 하나라도 마음에 걸린다면 박박 찢고 다시 씁니다. 주민등록등본엔 서울특별시라고 되어있는데 신청서엔 귀찮아서 서울시라고 줄여 쓰고 싶어도 그냥 서울특별시라고 씁니다. 실제로 괜찮겠지 하고 주소 줄여 썼다가 등기소에 가서 보정 다시 하고 온 저로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그 덕택일까요.... 오늘 강남등기소에서 업무를 보는데, 등기소 직원 분이 저한테 이런 일 많이 해보셨냐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서류를 잘 써온 민원인은 정말 드물다며, 아주 깔끔하게 잘 작성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답니다. 무언가 미묘한 칭찬이지만, 그래도 저는 제 나름대로의 성과측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소하고 작은 일, 내가 왜 하고있나 싶고 어디가서 도움이 될까 싶지만. 언젠가는 쓸 일 있으리.. 하고 오늘도 입술 앙당물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