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아마도 30년 40년 일을 해온 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겠지만 참 다양한 상황을 거쳐왔다.
그 상황 속에서 문득문득 깨닫는 것은 '아이디어를 낸다' 와 '아이디어를 실현한다'의 묘한 차이.
돈을 벌기 위해서든 사회 공헌을 위해서든 프로젝트의 목적을 불문하고 사람이 2명 이상 모여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때에 대부분 비슷비슷한 비율로 사람들이 나눠진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그 아이디어를 정리 하는 사람, 그리고 아무 생각도 안하고 멍 때리는 사람이랑, 별 상관없는 이야기만 계속 하는 사람. 그리고 이 사람들을 모아 이끌어가는 사람.
초반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튄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간혹 이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더 좋은 .. 표현하자면 1.5배 진화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있다. 화이트보드에 계속해서 키워드들이 적히고, 그 중에 가장 큰 호응을 받은 아이디어가 결정된다. 물론 엄청나게 빠르게 표현했지만 이 과정이 두 달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결정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우리 팀의 에이스라던가 씽크탱크라는 어마어마한 호칭을 선사받게 된다. 물론 다 그렇진 않지 ..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팀원들은 이제 됐다! 라거나 야 완전 대박인데? 하고 자신들의 성공을 100% 확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 다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일을 진행하면서 아이디어가 좋다고 극찬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끝없는 비판과 불신이 이어지는 시기가 온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사람'의 진가는 여기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낸 아이디어든간에 사람들의 쉴틈없는 불신을 다독이고 아이디어의 큰 줄기를 잡는다.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과정은 전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있으니까 행복해!'수준의 꽃길이 아니다. 과연 이 아이디어가 처음에 기대했던 만큼 결과를 내줄지도 모르고, 굳이 이 아이디어를 도맡아 진행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온통 안개 속을 헤쳐나가는 수준의 가시밭길이다. 괴롭거나 힘들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현실로 이끌어오며 최대한 이상과의 괴리를 줄이면서 실현해야한다는 의미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자질은 '책임감'이다. 게임식으로 표현해보면 아무리 능력 스탯을 찍어도, 책임감 스탯이 부족하면 계속 레벨업을 해봤자 최강 보스를 깨지 못하게 된다. 이거 내가 낸 아이디어라고, 남들 앞에서 폼 재다가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어느새 말이 없어지고 남들이 내는 세부 아이디어를 비판만 하다가, 슬며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아이디어를 실현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단체에서든.. 심지어 게임 길드에서도 처음에는 목소리 크고 말 많은 사람들을 따른다.
이쯤 글을 쓰다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아이디어는 결국 내 머릿속에서 시작됐을지라도 그게 화이트 보드에 적히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결국 내 것이 아니다. 그 점을 감수하고 팀원을 모은 것일테고, 최대한 내가 처음에 구상했던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 다음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사람'으로 모드를 바꿔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절한 위임을 통해 이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원판은 부모님을 닮은 자식을 보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 세상은 결국 나 혼자서 모든 걸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것은 내 동료들에 대한 또 하나의 책임감이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에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자질은 '집요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씨, 더러워서 내 안하고 만다! 하고 팀원이 나한테 침 뱉을... 정도까지는 가지 않아야할 집요함. 집요함이 없다면 집단이 모여서 일할 때 이끌어가기가 참 힘들어진다. 마음이 금방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지쳐버린다. 책임감이 있더라도 집요함이 없으면 그저 눈 앞의 일에 이끌려다니게 된다.
예전에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펑펑 터뜨리고, 누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말을 하는 사람. 그런데 이제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세상에 '이제껏 없었던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어딘가엔 있겠지만 그 아이디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면 아무 일도 못한다.
아이디어를 실현해 내는 사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잘 이끌고 자신의 아집에 빠지지 않으며 현실에 그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는 사람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비단 만들어낸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에 퍼져서 다른 사람들이 그 결과물로 더 대단한 것을 만들어내게끔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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