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1. 3. 6. 21:54

 이건 거의 커밍아웃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어차피 내 블로그에는 많은 이들이 오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써본다.
 나는 남들이 나보다 더 잘났을까봐 매우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다.
 나보다 말을 더 잘할까봐, 나보다 글을 더 잘쓸까봐, 나보다 더 PPT 잘 만들까봐, 기타 등등 ..
 나보다 무언가를 1g이라도 더 잘하는 사람을 보면 호흡곤란 증세가 온다. 어떻게든 내가 더 잘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굳이 잘 하고 있는 사람을 비판할 때도 있고, 모른 척 그냥 무시해버릴 때도 있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호흡곤란 증세가 아니라 부러움 증세가 나타난다.

 아마도 이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증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을까?
 어쩌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일을 잘해'라는 포지션을 획득하기위해 엄청나게 아둥바둥해오다보니
 이제는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내 생명이 곧 꺼지기라도 할까봐 호흡곤란 증세가 오기 시작했나보다.

 예전에는 이런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지금도 싫다. 하지만 아무리 인정해주려고 해도, 상대방이 나보다 더 무엇무엇을 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무시해버리거나 .. 그랬다. 왜냐하면 난 내가 제일 잘나고 싶었으니까. 난 말도 제일 잘하고 글도 제일 잘쓰고 PPT도 잘 만들고 영어공부도 잘하고 뭐든지 짱 엄청나게 혼자서만 잘하는 히어로같은 존재가 되고싶었으니까?

 무어라도 하나를 못하면 버려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득바득 절벽에서도 있는 힘을 다하며 버텼다. 남들을 깔아보고 다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를 써보기도 하고 어떻게든 내가 못하는 걸 감추려고 거짓말을 칭칭 감았다. 
 그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인정했으면 했다.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왠만하면 힘든 내색이나 엄청나게 좋은 내색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언제나 똑같이.
 내가 남들을 비웃듯이 누군가는 또 나를 비웃고 있을 테니 내 생각은 말하지 않고, 말하더라도 가시에 칭칭 감아서. 아무도 반론할 수 없도록 .. 
 


 하지만 사실은 그랬다. 사람들을 모아서, 그 사람들을 인솔해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무사히 숨을 쉴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데에는
 내가 짱, 내가 히어로, 내가 다 함, 나는 투명드래곤보다 쎄지롱, 하는 생각이 보탬이 되기보다는
 저 사람은 뭘 잘하고, 이 사람은 이걸 잘하고, 또 쟤는 저걸 나보다 잘하고.. 하는 생각이 보탬이 된다는 걸 알았다.
 나는 투명드래곤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구나. 인간은 머리가 미치지않은이상 나무도 잘 베고 페인트칠도 잘 하고 인테리어 감각도 있고 땅을 싸게 사는 재주도 있고 이성을 잘 꼬시는 능력도 있고 .. 그럴 순 없구나 .. 
 내게 필요한 건 비판이 아니라 포용이었구나.
 하는 걸 알았다.


 사실은 난 지금도 무섭다. 내가 뭐 하나를 못하면 당장 버려질까봐.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회사든, 동아리든지간에 ..
 내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내가 쟤 저럴 줄 알았다. 하고 저거봐 A가 쟤보다는 잘하잖아, 하고 나를 대체해버릴까봐 두렵다.
 그래도 이제 조금씩은 알 것 같다. 인정한다는 게 어떤건지, 사람을 포용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나 혼자 끙끙 앓았던 것보다 더 좋다는 게 어떤건지. 그래서 이 야밤에 커밍아웃하듯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솔직한 게 싫다. 솔직하면 공격당할 부분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솔직한 게 가장 강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처럼.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