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넣고, 인적성 시험을 치고, 면접을 보고.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면서 힘들어하다가...
고민고민하다가 인적성 시험을 안가버리기도 하고.
우리 부모님은 일부러 조심조심 내게 '요즘 뭐하니?' 하고 묻지 않으신다.
나는 대학교에 간 이후,작년 겨울까지 한 번도 집에 이틀 이상 연속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낯설면서도 또 무섭기도 하신 것 같다.
그만큼 내게 결정된 것이,또 허락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테니까.
우리 집에서 '대기업 취업'은 볼드모트 같다.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지만, 다들 인식하고 있다.
어느 집 아들은 어디에 갔다더라, 누구 집 딸은 뭘 땄다더라
그런 말이 전화로 들려와도 엄마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통화하곤 하신다.
아빠는 부쩍 용돈을 많이 준다. 대학교 와서 아빠한테 몇 만원씩 용돈 받아본 건 이번 년도가 처음이다.
딱히 어떤 말을 하면서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밖에 나간다 싶으면 용돈을 준다.
나는 어떨 때는 패배감에 헤엄치다가 어떨 때에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가
행복해졌다가 한 순간에 지옥의 끝으로 내동댕이쳐졌다가 한다.
누군가에게 내 상태가 어떻다고 설명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곧 변하게 되니까.
안개를 그냥 계속 헤쳐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내 앞에 무엇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게 낭떠러지인지 탄탄한 콘크리트 다리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삶은 불명확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이렇게 막막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지 이유를 모르겠다.
넣으려면 한없이 넣을 수 있겠지. 어디 케미칼, 어디 금속, 기름집, 손해보험, 어디 화재, 은행..
이렇게 일년정도는 너끈히 보낼 수도 있겠지. 토익을 좀 더 올리고, 손해봐서라도 학점 등록을 해서 재수강을 하고.
그런데 제일 큰 적이 내 안에 있다. ' 그래서 여기에 가면 넌 뭘 할거야? '
돈을 여유있게 많이 벌어야 해, 몇 년 안에 집을 마련해서 결혼해야 해, 하는 이유가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
한 마디로 배부르고 등따시니 나오게 되는 고민....
그리고 더 결정적인 건 ... 어찌되었든 내가 하고 싶은 건 이 쪽에 있지 않아. 그건 분명하다.
어디라도 큰 곳을 가야 할 이유,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으니까?
대기업에서 그런 걸 배워서 적용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게 벤처였던가?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건. 난 지금 누구보다도 중심이 내가 아니라, 주변인인 삶을 살고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오기던, 멍청한 짓이던, 합리화던 '어찌되었든 내가 즐거우니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무슨 선택을 하든 남을 중심에 두고 기준에 두고 생각한다.
나는 괜찮지만, 남들은 어떻게 볼까?
빙글빙글 출구 없는 미로를 돌고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언제까지고 출구를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멈춰서있으면 다행이지, 뒤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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