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U2010. 12. 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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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 끝난 지 벌써 3주가 흘렀다. 메디치가 끝나면 분명히 그 여운이 몇 주는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이어진 프로젝트 덕분인지 금새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한 며칠간은 뒤죽박죽 된 감정들로 많이 힘들었지만 ..

회사에 들어와서, 여러 행사들을 도왔지만 기획팀의 인턴으로 가장 처음 맡게된 건 MEDICI 였다. 그 때 당시에는 물론 이름도 달랐고, 컨셉도 많이 달랐지만 처음으로 맡아보는 행사 기획이라 들뜨기도 했고 걱정하기도 했었다. 연사 후보군을 선정하고, 리서치하고, 기획서 부분 부분 PPT를 만들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대체 '기획'이란 건 뭘까? 하는 질문은 그 때부터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워낙에 감정을 밖으로 보이지않고, 속으로 앓는 성격이다보니 초기에 메디치를 준비하면서 몰아쳤던 머릿속 마음속의 폭풍은 다행히도 나밖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그 때부터 속시원하게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에이젼시팀에서 섭외를 하고, 섭외가 잘 안되면 또다시 리서치를 하고, 대표님에게 컨펌을 받고 .. 섭외 메일을 쓰고, 기획서 최종본을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기획 회의를 했었다. 차라리 초반에는 나았다. 그래도 모두 다 함께 메디치에 대해서 고민했던 시간이 잠시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청춘페스티벌 준비와 아름다운 재단 행사 준비를 하며 규모가 큰 행사를 준비하느라 회사의 사람들이 메디치에는 점차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 시점까지만 해도 메디치는 3,000여명을 대상으로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내가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멤버쉽 파티'처럼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지금도 그게 좋은 생각이었는지는 확신이 없지만, 대표님의 호응과 함께 메디치의 컨셉은 전면적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가 본격적인 다른 행사 준비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메디치 실무에 대해서는 내가 도맡게 되었다. 

정말로, 쉽지 않았다.

VIP들을 섭외하고, 마케팅 플랜을 짜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조차 없이 일단 급한대로 일을 찾아서 하고, 대표님에게 컨펌을 받고 그대로 진행하는 식의 과정이 계속되면서 날이 갈수록 책임감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메디치를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데, 다들 신경을 못 쓰고 있으니 여기에 올인하고 있는 나라도 잘해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하자고 주장했으니만큼 책임을 져야하는데 ..
메디치도 강연+파티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지만 엄연한 '상품'이니만큼. 소비자가 구입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도 나는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팔아본 적 없었다. 과연 이 물건이 팔릴지에 대한 판단조차 힘들었고.. 어떻게든 홍보를 해보려 했지만 시간도 부족했고 지식도 부족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 몫의 한 2.5배는 하고 있는 듯 해서 더 힘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내가 하루쯤 괜찮겠지, 몇 시간쯤 늦어도 괜찮겠지, 이 부분 그냥 넘어가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던 아주 사소한 딜레이나 문제들은 나중에 메디치 전 주, 혹은 메디치 행사 당일날까지 큰 문제 폭풍으로 몰아닥쳤다. 
협력사와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회사 내부적인 커뮤니케이션들에 있어서 하나하나 체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그 상황 자체가 문제시 된 경우도 있었다.
처음부터 마스터 플랜을 짜고 일을 실행한 것이 아니었기에 군데군데 비는 부분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 내가 메디치에 오는 '고객'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애시당초 메디치의 타겟층은 2535 리더였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허술하기 짝이 없는 타겟층이었던 것이다.
회사라면 대체 어느 산업분야의 회사, 또 회사원이라면 어느 정도 연배의 회사원, 무엇을 원하는 회사원, 어디에 많이 있는 회사원인지 확실한 고객을 구체화 시켜놓고 거기에서 모든 출발을 했어야했는데..
컨셉부터 잡고 고객을 거기에 끼워맞춘 셈이었다.

내가 경영학도로써 배웠던 모든 지식들은 실무를 하면서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고.절박에 가깝게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식들이 쌓였다.
이 모든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홈페이지도 제대로 오픈하지 못하고, 검색 등록조차 하지 못하고 메디치 티켓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고 .. 허술한 고객에서 시작된 허술한 홍보는 아주 정직하게 작용했다. 티켓이 잘 팔리지 않았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누가 '표 얼마나 팔렸냐'고만 물어봐도 얼굴 표정부터 굳어버리고, 메디치 꿈을 꾸었다.
회사 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고, 이런 저런 방법들을 다 동원해서 당일 날 300명은 채울 수 있었지만 .. 


표가 잘 팔리지 않았던 것도, 이런 저런 문제가 하루에 하나씩 발생한 것도, 이 모든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다음 번을 기약하면 마음이 풀릴만한 것들이었지만 ..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내가 '기획팀'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렇게 열심히, 내가 내 영혼을 깎아먹으며 행사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모은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당일날 와서 느끼게 되는 것은 연출팀이 준비한 조명, 음악, 연사들의 이야기,행사 프로그램,전체적인 분위기다. 
포스터, 웹 홍보 이미지, 블로그, 홍보 글귀, 어느 곳 하나 나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데..
결국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행사 당일 와서 느끼는 것은 모두 연출팀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리셉션 데스크에 서서 정신없이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티켓을 나눠주는 동안, 행사를 운영하는 것은 연출팀이다.
어느 순간 데스크에 서서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밖에는 들질 않았다.
기획이라는 건 대체 뭘까.
행사의 테두리를 만드는 것? 예산을 짜고, 정해진 연사를 섭외하고, 마케팅을 진행하고, 전체 스케쥴을 관리하고..
정작 내가 원했던 그림도 나오지 않은 채, 의지가 프로그램에도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

한참 그냥 데스크에 서서 그런 생각들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메디치를 마무리 짓고 나서도, 다른 글이나 감상을 얘기하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내가 최초로 보조를 맡은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냥 하나하나 꾸역꾸역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쓰게 됬다. 덕분에 엄청난 스크롤의 압박.. 누가 읽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두달 가까이 메디치를 준비하면서 다른 곳에서 일년 배울 걸 압축해서 배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성장했다.
지금 마이크임팩트 스쿨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도 물론 계속해서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지만..

끝을 너무 슬프게 마무리짓는 것 같다.. -_-; 내게 엄청난 질문과, 성장을 가져다 준 메디치. 고마웠어!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