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U2010. 9. 23. 21:41

저는 내가 우리 부모님 자식이구나 .. 하고 강하게 느낄 때가 가끔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실감하는 것은 '잔인한 장면을 보았을 때'와 '롤러코스터를 바라보고 있을 때' 입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피 튀는 잔인한 장면을 좀처럼 못보십니다. 발바닥에 압정이 박히는 장면에서도 고개를 돌리고, 심지어 딸내미가 귀를 뚫은지 얼마 안되어 막힌 것 같다고 SOS를 보냈을 때조차 자기들은 도저히 볼 수 없으니 의사선생님한테 가보라고 말하셨던 분들입니다 -_- 저는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받아서, 누가 누군가를 때리거나 죽이기 위해 위협을 강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기분이 몹시 나빠져 눈을 감고 귀를 막곤 합니다.

예전에는 그저 제가 여자라서 좀 더 마음이 여린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몇 안되는 여성성의 증명이라 생각했고, 사실 이 점을 말할 때마다 저를 억세게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은 의심을 거두지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최근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죽이고 싶은' 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주연으로 나온 유해진의 선택이 실망스러울만큼 재미없는 영화였죠. 그래도 돈을 낸 이상 끝까지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영화가 거의 끝나갈즈음에 주인공 두 명이 병실에서 싸우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몸이 아직 온전하지 않아서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지고, 온 몸을 힘들게 움직여가며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웠습니다. 저는 곧 눈을 감아버렸지만, 누군가 내리찍고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찢어지는 소리는 여과없이 들려왔습니다. 그 장면은 참으로 길고도 길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체 이렇게 잔인한 장면이 오래 나와야 할 이유는 무엇인건가. 그만큼 서로를 향한 증오심이 깊었다는 걸 보여주나? 하지만 굳이 이렇게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필요가 있는건가? 여러 짜증을 내고 있던 중 ... 앞좌석에 앉아있던 아줌마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은 매우 즐겁게 장면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어이쿠, 저거 봐라 진짜 퍽퍽 찌른데, 어이구 대단타.. 하며. 십여분 내내 그 분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화면을 주시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강렬한 이물감을 느꼈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취향의 차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장면은 실제가 아니며, 유해진은 멀쩡히 지금도 밥 잘 먹고 돌아다니고 있을거고, 그 주인공 두 명은 더 심한 짓을 당해 마땅한 나쁜 종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 눈 앞에서 태연히 그 장면을 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그 분들의 분위기가 잊혀지질 않습니다.


차라리 저 영화는 양반입니다. 악마를 보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아저씨까지도. 어떠한 여과 없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들 뿐일까요? 실상 영화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너무나 당연하게 담아냅니다.
영화뿐 아니겠죠. 유명한 미국 드라마 CSI, 크리미널 마인드, 등등 ..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쾌감을 가지게 한다던가, 아니면 그 장면 자체가 어떤 메세지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할 문제이지만.. 그게 아니라 단순한 상업성과, 실감난 분위기를 위해 살인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현상을 보여주는 걸까요? 
우리들은 .... 너무나도 자극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머니께서 인셉션을 보고 와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영화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니.' 저는 좀 어이가 없었어요. 인셉션이 도대체 어디를 봐서 폭력적이라는건지. 사람을 막 찔러죽이는 것도 아니고 .. 살인범을 다룬 영화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선 '왜 그렇게 사람을 때리고, 총으로 쏴죽이고, 건물들이 부숴지고 .. 이런 장면들이 반복되는 지 모르겠다'고 하셨을 때 비로소 느꼈습니다. 
저는 이미 엑스트라가 총을 맞아서 몇 십명이 죽거나, 주인공이 신나게 차를 몰다가 몇 개의 차를 들이박고 멈추거나, 건물이 부숴지고 폭파되면서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리란 사실에는 전혀 무감각해져있다는 걸.

저 놈은 나쁜 놈이니까 죽어버려도 싸.
히어로가 악당과 한 판의 싸움을 끝내면서 죽어가는 수많은 시민들. 

좀 더 잔인하게, 좀 더 생생하게, 좀 더 실감나게. 동굴을 탐험하러 들어갔을 뿐인데 정신나간 미친 놈 때문에 톱으로 썰려 죽어가는 10대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현상인걸까요?
가짜니까? 저 화면의 일들은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이니까? 

왜 점점 더 영화는 잔인해지고. 사람들을 죽이는 수많은 수법에 대해서 논하는 매체(범죄스릴러등..)들이 많아지고 있는 걸까요?
이 현상들이 우리를 점점 더 본능적으로 이끌어내고 죽음을 마치 유희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게임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과연 저의 비약인걸까요?

히어로나 그와 가까운 몇 명의 사람들의 목숨의 가치가 죽어버린 엑스트라 몇 십명의 가치보다 높은 걸까요?
다만 영화에서 볼 뿐이니까, 만화나 이런 가상의 세계에서 보는 것 뿐이니까 현실과는 전혀 관련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사람이 동물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또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살해한다는 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