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그림을 그린다. 1년 3개월 째, 서양화를 그리고 있다.
워낙에 글도 좋아했고, 책도 좋아했고, 역사에서 시작해서 경제학, 철학, 음악, 과학까지 다방면에 관심이 깊어 관련 주제로 한 번 이야기하면 1시간은 우습게 이야기할 정도로 지적인 분이라 처음엔 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냐고 물어봤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어느 덧 하루에 5시간 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일년이 훌쩍 지났다.
집안에 물감 내음이 나고, 여기저기 그림책이 돌아다니고, 어느덧 개인전은 아니지만 첫 단체 전시회도 열었다.
엄마는 원래도 아는 게 많았지만 그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지금까지 엄마가 생각해왔던 모든 학문들을 미술과 관련해서 녹여내기 시작했다. 한옥에 대한 생각, 붓꽃의 모양, 장미의 구조 ..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나를 보며 요즘 들어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예술가로 산다는 건 삶을 정말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었다.
예술을 업으로 삼는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 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지는 나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다만, 예술을 아끼고 그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지 놀라고 있다.
사람이 왜 자연스러운 것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지.
시끄러운 차소리가 아니라, 새소리, 물소리, 향수가 아니라 그냥 맑은 공기, 풀냄새. 인공적인 흰 색이 아니라, 조금 누런 창호지 색깔.
잔뜩 자극적인 맛을 내는 음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쾌한 상추.
나는 굉장히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더러운 거 싫고, 태양 아래 그대로 노출되는 거 싫고. 벌레도 싫어하고, 몸이 고생하는 거 정말 딱 싫다. 하지만 자연스러움 안에 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니까, 예술은 내게 가끔 사람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온통 자신을 강조하려고 자신의 생각을 억지로 밀어넣는듯한 옷이나 화장, 말투, 목소리 ..
그 안의 숨통을 틔워내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예술이라고 생각된다.
좀 더, 내가 그림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진도, 음악도..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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