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U2010. 10. 2. 16:25

 요즈음은 정말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
 그냥 동영상을 보다가 왈칵 울기도 하고, 노래를 듣다가.. 글을 읽다가. 알 수 없는 포인트에서 예상치도 않게 울 때가 있습니다.
 아주 슬프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닌데 ..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꽁꽁 숨겨두고 항상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내가 공격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겨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진심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면 됩니다.
 내가 아플 거 마음 상할 거 다 피해가기 위해 최대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야 쉼없이 계산하며 지내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진짜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왜냐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게 되어버리거든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나를 숨기고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거리를 두다보니,
 진짜 내가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웃고 어떨 때 슬프고 사람을 미워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리거든요.
 
 진심을 내비치지 않으면 나조차도 결국은 진심이 뭔지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사람은 컴퓨터처럼 정보를 기록해놓고 똑같은 계산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까,
 인풋 아웃풋이 일정하게 계산될 수 있는 생물체가 아니니까.
 

 내가 숨겨두고, 지나친 나의 감정들이 어느 순간에선가 삶에서 떨어져 나와서
 내가 돌아봐주길 기다리며 그 길에서 한없이 혼자 남아있다가.
 노래를 듣거나 책을 보는 순간, 남겨져있던 그네들의 조각이 외치는거지요.
 자신들은 아직 살아있다고.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에 눈물로 나타나고 또 그렇게 사라지게 되는 거지요.

 가슴이 아프고, 시려서 웁니다.
 모니터 너머로도 전해지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또 내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나, 즐겁게 살아가는 너, 말고도 한참 더 많고도 많다고.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0. 9. 23. 21:41

저는 내가 우리 부모님 자식이구나 .. 하고 강하게 느낄 때가 가끔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실감하는 것은 '잔인한 장면을 보았을 때'와 '롤러코스터를 바라보고 있을 때' 입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피 튀는 잔인한 장면을 좀처럼 못보십니다. 발바닥에 압정이 박히는 장면에서도 고개를 돌리고, 심지어 딸내미가 귀를 뚫은지 얼마 안되어 막힌 것 같다고 SOS를 보냈을 때조차 자기들은 도저히 볼 수 없으니 의사선생님한테 가보라고 말하셨던 분들입니다 -_- 저는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받아서, 누가 누군가를 때리거나 죽이기 위해 위협을 강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기분이 몹시 나빠져 눈을 감고 귀를 막곤 합니다.

예전에는 그저 제가 여자라서 좀 더 마음이 여린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몇 안되는 여성성의 증명이라 생각했고, 사실 이 점을 말할 때마다 저를 억세게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은 의심을 거두지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최근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죽이고 싶은' 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주연으로 나온 유해진의 선택이 실망스러울만큼 재미없는 영화였죠. 그래도 돈을 낸 이상 끝까지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영화가 거의 끝나갈즈음에 주인공 두 명이 병실에서 싸우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몸이 아직 온전하지 않아서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지고, 온 몸을 힘들게 움직여가며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웠습니다. 저는 곧 눈을 감아버렸지만, 누군가 내리찍고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찢어지는 소리는 여과없이 들려왔습니다. 그 장면은 참으로 길고도 길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체 이렇게 잔인한 장면이 오래 나와야 할 이유는 무엇인건가. 그만큼 서로를 향한 증오심이 깊었다는 걸 보여주나? 하지만 굳이 이렇게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필요가 있는건가? 여러 짜증을 내고 있던 중 ... 앞좌석에 앉아있던 아줌마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은 매우 즐겁게 장면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어이쿠, 저거 봐라 진짜 퍽퍽 찌른데, 어이구 대단타.. 하며. 십여분 내내 그 분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화면을 주시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강렬한 이물감을 느꼈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취향의 차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장면은 실제가 아니며, 유해진은 멀쩡히 지금도 밥 잘 먹고 돌아다니고 있을거고, 그 주인공 두 명은 더 심한 짓을 당해 마땅한 나쁜 종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 눈 앞에서 태연히 그 장면을 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그 분들의 분위기가 잊혀지질 않습니다.


차라리 저 영화는 양반입니다. 악마를 보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아저씨까지도. 어떠한 여과 없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들 뿐일까요? 실상 영화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너무나 당연하게 담아냅니다.
영화뿐 아니겠죠. 유명한 미국 드라마 CSI, 크리미널 마인드, 등등 ..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쾌감을 가지게 한다던가, 아니면 그 장면 자체가 어떤 메세지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할 문제이지만.. 그게 아니라 단순한 상업성과, 실감난 분위기를 위해 살인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현상을 보여주는 걸까요? 
우리들은 .... 너무나도 자극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머니께서 인셉션을 보고 와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영화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니.' 저는 좀 어이가 없었어요. 인셉션이 도대체 어디를 봐서 폭력적이라는건지. 사람을 막 찔러죽이는 것도 아니고 .. 살인범을 다룬 영화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선 '왜 그렇게 사람을 때리고, 총으로 쏴죽이고, 건물들이 부숴지고 .. 이런 장면들이 반복되는 지 모르겠다'고 하셨을 때 비로소 느꼈습니다. 
저는 이미 엑스트라가 총을 맞아서 몇 십명이 죽거나, 주인공이 신나게 차를 몰다가 몇 개의 차를 들이박고 멈추거나, 건물이 부숴지고 폭파되면서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리란 사실에는 전혀 무감각해져있다는 걸.

저 놈은 나쁜 놈이니까 죽어버려도 싸.
히어로가 악당과 한 판의 싸움을 끝내면서 죽어가는 수많은 시민들. 

좀 더 잔인하게, 좀 더 생생하게, 좀 더 실감나게. 동굴을 탐험하러 들어갔을 뿐인데 정신나간 미친 놈 때문에 톱으로 썰려 죽어가는 10대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현상인걸까요?
가짜니까? 저 화면의 일들은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이니까? 

왜 점점 더 영화는 잔인해지고. 사람들을 죽이는 수많은 수법에 대해서 논하는 매체(범죄스릴러등..)들이 많아지고 있는 걸까요?
이 현상들이 우리를 점점 더 본능적으로 이끌어내고 죽음을 마치 유희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게임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과연 저의 비약인걸까요?

히어로나 그와 가까운 몇 명의 사람들의 목숨의 가치가 죽어버린 엑스트라 몇 십명의 가치보다 높은 걸까요?
다만 영화에서 볼 뿐이니까, 만화나 이런 가상의 세계에서 보는 것 뿐이니까 현실과는 전혀 관련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사람이 동물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또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살해한다는 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0. 9. 23. 01:18

재미있는 글을 읽으면 행복해집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칼로리야 뭐 어떻든 그 순간은 마치 눈 앞에 혈기왕성한 참치가 순식간에 해체되어 내 입안에 녹아드는.....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저는 항상 그런 능력을 동경해왔습니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앞에서 모든 긴장을 풀고 릴랙스하며 평소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던 본인의 치부를 털어놓거나, 아니면 한숨 놓고 바보같이 웃어버리거나, 등등의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지금껏 가장 흥행성이 높았던 저의 글은 대개 사람들을 매우 슬프게 만들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정신무장을 하게끔 만드는 분위기였었죠.

글에서뿐 아니라 실제로 저를 마주대하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대개의 경우는 바짝 긴장을 하더라구요.
아무 생각 없이, 정말로 아주 가볍게 웃자고 던진 얘기에 정색을 하며 달려드는 사람들도 있었고
왜 맨날 너는 그렇게 반론의 여지 없이 말을 하냐며 충고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제 앞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하고, 최고의 방어기제로 저를 공격하는 말투와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슬펐어요.
나는 정말로 당신을 공격하고 싶었던걸까? 그러면서 나 자신을 증명하고 우월감을 가지고 싶었던걸까?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보았어요. 상대방의 말이 무엇이든간에 맞장구를 치고, 끄덕여보고, 어떻게든 상대방이 호감을 느낄만한 선택지를 골라서 답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회의감이 깊어졌어요.
진실이든 거짓이든...옳든 그르든간에 상대방에게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동의했어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말이라는 걸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 것에게서 아무런 의미도 느낄 수 없어졌어요.
말만 나불나불,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호감도를 사려는 스스로의 행위가 혐오스러웠어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입을 다물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나는 어제 무슨 책을 읽었는지..
나는 내가 사람을 좋아하긴 하는건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었어요.



어떤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말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은 없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은 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싶어요.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0. 9. 12. 14:06

요즘들어 부쩍 동생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 아이에게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내가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입니다.
TV를 볼 때에 잘생긴 연예인이 나오면 '저 연예인은 성형을 했을까?'가 그 아이의 궁금증이고
성량이 풍부한 뮤지션이 나오면 '저 뮤지션은 목소리를 타고난걸까?'가 그 아이의 궁금증입니다.

자신에게 타고난 것이 없으며, 외모, IQ, 키, 노래, 그림 등 .. 재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나는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 결국 이길 수 없는 건 아닌가 ..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어쩌면
사람으로서 당연한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그 분야에서 정말 피를 토하듯이 노력하면, 그게 아니라면 미친듯이 즐겨버리면 이길 수 있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하다가도 정말 내가 피를 토하듯이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분야를 그만큼 좋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접어버리죠.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난 최대한 간지나게 살고 싶어,
남들과는 다르게! 그 누구와도 다르게! 특별하게, 멋지게, 누가 봐도 '우와 쟤 좀 쩔어주는데?'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살고 싶어!

그런 생각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노력은 한 톨도 하지 않는 태도 역시 또 누가 비난할 수 있겠어요.
왜냐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누구나 특별하다는 말은 그 아이에게 진부한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름난 외국계 회사에 수많은 스펙을 가지고 취직한 20대를 동경하며,
스스로 창업을 결심하고 노력하는 청년 기업가를 부러워하고,
오픈카를 몰고 압구정 한 로드샵에서 내리는 여성에게 한 눈에 시선이 쏠립니다.
하다못해 대학생 잡지에 실리는 것은 '잘난 아이들'이고 
도서관에서 노량진에서 꿈속에서조차 공부하는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자신조차 '그렇게' 살고싶지 않으면서,
누군가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은 누구나 특별한 사람들이고, 존중받을 생명이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하게 되는 순간
그 아이에겐 그 모든 말들이 그저 위선에 불과하다고 느껴집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하며,
그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노력을 해야합니다.
노력을 안한다면 특별한 문화를 즐기며 사는 듯한 느낌이라도 주어야 합니다.
더 독특한거, 더 섹시한거, 더 hot한거! 
알맹이는 텅텅 비어있을지라도.

-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잘 하는 일을 찾거나.. 
어쩌면 이 세상에 몇 퍼센트밖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이 두 문장 때문에
아이들은 오늘도 또다시 절망합니다.
좋아하는 일도 딱히 모르겠고, 잘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 나는 결국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난 평범하게 하루 하루 돈만 열심히 벌다가 죽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

어떻게 살아야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걸까요.
또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은 무슨 기준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걸까요?

무작정 도전하라고들 합니다. 더 많이 경험해보고, 그래. 여행도 여기저기 다녀보고 젊었을 때 사서 고생해보라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무작정 여기저기 부딪히고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상적인 패턴에서 내 할일을 찾아낸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하나요?

- 방황하는 게 당연한 것이 청춘이다.
저는 아직도 동생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주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더 오래 살다보면, 더 많이 경험하다보면, 니가 관찰력을 키우면, 그러면 네가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을 언젠가는 찾겠지..
당장 머릿 속이 터질 것 같고 마음이 먹먹한 아이에게 그런 말은 절대 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만은 잊지 말라고.
아무리 가식적으로 느껴질 지라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내가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크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소소한 행복함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쯤은 원하는 콘서트를 가기 위해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그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너와 나같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재능 아니겠냐고. 
제가 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그뿐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0. 7. 31. 19:53

나의 블로그 주소를 입력할 때마다, 이상하게 힘을 얻는 기분입니다.
제가 지어놓고도 참 잘 지었다 생각합니다. 일상속에 녹아있는 영웅. 오뒤너뤼 히어로.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앞으로 가야하는지, 뒤로 가야하는지
지금 제게 방향이 있긴 한걸까요?


이전에 저를 도와주었던 것들이
지금은 저를 전혀 도와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조언이나, 친구들과의 수다나, 평소 존경해왔던 사람의 강연이나, 눈에 뜨이는 책이나.

흔들리는 것이 젊음이라고 하였고, 방황하는 게 당연한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지독합니다.
무엇을 위해 힘을 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릴 힘조차 없어진 기분입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는게 참으로 아깝습니다.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모래알이 흩어지듯이 시간이 내 손에서 흘러가는 것을 차마 어쩌지도 못하고.


비웃지말아주세요.
지금 저는 몇 명의 사람 빼고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대화를 하는 법도 잊어버렸고, 자신의 의견을 소리높여 강요하는 방법도,
전투적인 느낌도, 스스로를 방어할 기력도 스러졌습니다.
Posted by moonsun_
사회적 기업2010. 6. 17. 15:03

 역시 글은 하나로 끝내는 게 가장 깔끔한 것 같습니다. 원페이지 프로포절..... :] 한장으로 기획한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면 망한 기획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냥 끝내기엔 아직 스스로가 내린 답을 정리하지 못했기에 2탄, 시작합니다.
 지난번에 글을 올리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말은 뭘까, 그리고 또 내가 놓친 부분은 뭘까, 이 장황한 글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 내가 이런 말을 할 주제나 되나. 사회적 기업 관련해서 쪼끔 경험해보고 사람들 좀 만나보고 벤쳐도 잠시 준비해보고 관련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두어달 했다고 주제넘은 말을 해도 되는건가. 아예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실감한 사회적 기업이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은 부분 차이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읽어주고 관련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가 있는거구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바로 현재 사회적 기업의 성장가능성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기업은 사실 '일자리 창출'이 주된 키워드라는 점은 지난번 글에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재정적인 부분에서 사회적 기업은 어떤 상태에 있을까 궁금하여 LG 경제 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의 지속성장 가능성' 보고서를 읽어보았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07년 사회적 기업의 총 매출액은 06년에 비해 28배 늘었고, 당기 순익은 300배 증가, 총 자산 증가율은 48.5%로 매우 양호한 상태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희망적인 내용의 기사나 칼럼을 쓰는 사람들도 많구요. 좀 더 정확한 자료를 보고싶어 09년도 9월에 노동부에서 제공한 '08년도 사회적 기업 성과분석' 보고서를 찾아보았습니다. 확실히 300페이지가 넘는 웅장한; 자료들이라서 전부 읽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통계치를 접하면서 어느정도 생각이 정리되는 부분이 있더군요.
 08년도 기준으로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는 총 1조 5천 729억원의 예산이 투입됬습니다. 굉장한 액수죠. 이렇게 투자한 만큼 사회적 기업 관련 일자리는 03년도 2천개에서 08년 22만 8천여개로 증가합니다. 09년도 08월 기준으로 하여 252개의 기관이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구요.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목적이 지역사회공헌인 사회적 기업은 비율상 줄어들고있고, 일자리 제공형이 43.3%정도의 비율로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기업이 인증받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으니, 목적성에는 가장 잘 맞는 성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자리 창출 분야에서 비율, 숫자만 보자면 긍정적인 중간 결과입니다. 하지만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사업 종사자는 5100여명입니다. 유급으로 근로하는 사람들의 55.5%에 이르는 비율이며, 상당수가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끝날 경우, 사회적 기업의 자체적인 매출액이 증가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고용 비율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 자체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사회적 기업의 사업비 중 63.4%는 영업활동을 통한 매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평균치이며, 높은 매출은 몇몇 기업에 편중되어 있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회복지법인이나 비영리 민간단체는 매출액이 50%로 낮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영업손실을 분석해보면 영업실적은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정부지원금의 보조가 없다면 사회적 기업의 손실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건비의 비중도 높은 편이라, 사실상 매출원가 + 인건비만 단순 합산하더라도 무려 105.2%로 매출액 전체를 소요하고도 부족한 수치가 됩니다. 마이너스 이익구조를 계속해서 가지게 되는 셈이죠. 또한 1인당 매출액이 17500000원에서 17100000원으로 크게 하락하였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생산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매출액이 늘어나고, 당기 순이익이 늘고, 부채비율이 100%정도로 재정건전성이 훌륭하다는 판단도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그 수치는 단순히 표면적인 수치에 불과합니다. 부채비율이 100%인 이유는 잘 따져보면 사회적 기업이 정부의 지원금이라는 루트를 가지고 있으며 공식적인 경로로는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기도 합니다. 
 
 지금 현재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열심히 시장을 개척하려 노력을 하고 있는 분들에 대해서 '경쟁력이 낮다'고 건방지게 평가를 내리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의 정부에서 말하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에 소속된 또 하나의 부처기관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하고싶어질정도로 프레임이 일그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고용 없는 성장에 대안책으로 또다른 제 3의 '공공부문'을 창출하면서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대책들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테고 그 때에 저와 같은 20대들은 분명히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요즈음 착한 기업 내지는 사회의 혁신,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언론 그리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기업'이 진짜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만들어내는 기업' 일까요? 20대들의 대안이라며, 88만원 세대에게 꿈을 품으라고 하며 눈 앞에 제시해주는 '사회적 기업' 이 정말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기업이 맞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아닙니다. 추구하는 키워드 자체가 다릅니다. 사회적 기업, 이라 말을 했을 때 서로 떠올리고 있는 이미지는 북극에서 열대수를 보길 기대하는 것만큼 떨어져있습니다. 
 
 단순히 착한 일을 하고싶어서, 정의로운 일 하면서도 돈 벌 수 있길 바라면서, 아예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멋진 기업가가 되고싶어서, 사회적 기업에 관해서 조금 관심을 가지다보니 좋은 것 같아서. 확실히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좋은 일 같으니까 소셜 벤쳐로 발을 들이는 20대들이 있습니다. 일단 가까운 사례로 저를 들 수 있겠네요. 기업가분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사회적 기업에 대한 발표 사례를 보고, 외국에서의 사회적 기업 이야기를 듣고, 점점 더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 잘못된 프레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머리아픈 통계 수치를 들먹인 것이 그 이유입니다. 저 통계치 안에는 저와 같이 어리버리한 20대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전문 인력은 커녕 관련 분야에 관한 깊은 지식도 없이 일단 좋은 아이템을 들고 다소 진입장벽이 낮은 소셜벤쳐를 시작해 보겠다고 애쓰다가 떨궈지고 갈 곳 몰라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니까, 사회에 좋은 일을 한다니까, 네트워크에 몇 번 나가보니 다들 좋은 사람 같고 어느정도 시험삼아 하기에 재미있을 것 같으니 하는 사람들도 있을겁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몇년 안에 냉정하게 가려낼 수 있겠죠. 1년 이상 버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일그러져 있는 프레임을 자꾸만 들먹여서 이런 사람들을 늘릴 필요는 없단겁니다. 저런 리스크를 분명히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진정한 벤쳐정신을 가진 기업가겠지요. 그러나 리스크는 뒷전으로 둔 채 표면적이고 달고 맛난 부분만 지속해서 제공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기업이나 '사람'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현 시점에 사회적 기업은 '사람'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합니다. 그렇다면 그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올 때, 이 분야에서 함께하고자 할 때 확실하게 프레임을 재정비 시켜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며, 상태가 대체 어떻고, 확률은 어느 정도인지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호기심, 열정, 의지, 모두 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 입니다. 내가 이 곳에 왜 오게되었고, 이 곳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 방향이 맞는지, 이미 빠져있는 사람은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하기가 힘이 듭니다. 누구나 다 자기가 보고싶은 정보만 받아들여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주고, R&D 비용도 지급해주고, 여기저기서 사람을 구하는 등 각종 쏟아지는 정보들로 스스로의 프레임이 가려지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을 해보았으면 하는 겁니다. 무작정 홀려서 달려드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받는 형태가 될 수도 있는 사회적 기업 역시 마찬가지구요. 

 20대에게는 사회적 기업이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정부가 지금 꾸며놓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에서 20대의 설자리는 없습니다. 20대는 사회적 기업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도 아니며, 몇 년간 신뢰로 구축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지도 않았으므로 보조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지속가능성 부문에서는 더욱 성공확률을 따지기 어렵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글은 열정으로 가득차있으며 아이디어를 현실화로 구축하고, 그럴 능력을 지닌 기업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저와 같이 아주 평범하고,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잘 모르고 있으며, 사실 어느 분야에 관심이 많고 잘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모르는 20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마치 사회적 기업이 모든 일자리에 대한 대안인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생각이며, 이 글을 쓰게 된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글을 끌어내기까지 참 힘들었네요. 그냥 본질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사회적 기업이 대체 뭔지, 보노보 혁명을 읽고 우리나라의 기사들을 보고 사회적 기업가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보고 .. 하면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불편함은 무엇인지 따져보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자료들을 보면서 가장 쇼킹했던 점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적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하는 목적이 상당히 크고, 그것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사실 전 '착한 소비를 이끌어내는 착한 기업, 기업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이끌리는 기업' 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이미지가 상당히 달랐다는 면이 놀라웠습니다. 실체가 없이, 그냥 이미지만 둥둥 떠다녔을 뿐이죠. 
 정부에서 법률을 제정할 정도로 이렇게 강력하게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도 영국, 프랑스정도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부분도 참 불안한 부분입니다. 지금 사회적 기업의 일자리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이건 사실 '정부가 고용한'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50%가 넘는 수가 정부의 지원금으로 고용이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그저 꿈과 희망, 잘 될 것이라는 열정, 사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깊지않은 상태에서 소셜 벤쳐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슨무슨 아카데미, 어떤어떤 세미나, 워크샵등을 들으면서 국내 사회적 기업의 이상을 담은 발표를 보며 푸른 꿈을 꾸게 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러기 전에 깊게, 깊게 .. 생각을 가다듬고, 냉정하고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서 글을 씁니다. 저도, 이휴,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사회적 기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적 기업과 브랜딩.  (1) 2010.04.18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0. 6. 16. 17:19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입니다. 

Posted by moonsun_
카테고리 없음2010. 6. 9. 17:12



 분명히 아주 간단한 키워드에서 시작했는데, 자료를 모으고 읽다보니 워드로 5페이지에 육박하는 텍스트를 입력했더랍니다. 세상에. 중간중간 이상한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빠져나오기도 하고. 이거 시리즈 물로 써야하는 거 아니야? 하고 혼자서 중얼거려보기도 하고이 포스팅의 제목도 몇 번이나 바뀌었지요. 사회적 기업의 버블현상, 사회적 기업의 %&$&$*… 을 거쳐 결국 약간 독해보이는 제목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20대의 솔루션이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프레임을 가진 사회적 기업이라면요.


  가끔 친구들 혹은 주위 사람들과 사회적 기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이 사회적 기업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지금과는 다른 것 같기도 하고, S모 그룹이나 L모그룹처럼 못되고 독하게 돈을 버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사회를 왠지 긍정적으로 바꾸어줄 것 같다는 느낌들만이 둥둥 떠다닙니다. 게다가 언론에서 연일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도 그렇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좋은 일을 하는 곳이고, 도전정신을 가지고 시작해야하며, 88만원 세대의 대안이라고까지 합니다. 사회에 혁신을 불러 일으키는 기업이며 많은 20대들이 사회적 기업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터뷰 기사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본다면, 그 기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08년도에도 09년도에도 올해에도 동일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달을 수 있죠.

 2010년이 되면서 사회적 기업 은 점차 열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생겨나는 지원금과 벤쳐 경연 대회, 창업 과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죠. 그러면서 저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이미지와 실제로 관련 분야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며 조금씩 피어오르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그럼 이쯤에서 소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주 기초적이게 느껴질 질문을 해봅니다. 현재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시발점은 사회적 기업 육성법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07 7월 시행된 그 법에 내용엔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 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표현됩니다. ,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인 것이지요. 당연히 정부쪽에서는 두 눈이 번쩍 트일 일입니다. 여기도 실업률 저기도 실업률 올라가는 소리밖에 안들리는 상황인데 일자리 창출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사회적 목적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도 들어가있고, 시장경제에서 그렇게 사모해 마지않는 기업이기까지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지요.

 07년도에 육성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정부의 프레임 짜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적 기업 = 일자리 무지 많이 창출, 사회적 기업은 사회 혁신 활동 중 하나라니까 도전, 열정 이런 키워드를 넣기 딱 좋아보임. 좋아. 이제부터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 창출 주사업이다! 여기에 돈을 팡팡 지원하고 실질적으로 일자리가 생겨날테니 숫자놀음하기에도 딱 좋겠군. Let’s go!..... 물론 우려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시민 단체에서 사회적 기업을 정부측에서 지원해주길 바랬던 이유는 빈곤이나 실업 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까 고민중에 사회적 기업 모델이 수면위로 올라왔던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을 바라게 되었던 것인데 예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좁은 키워드에 정부의 목적을 집중시켜버렸던 것이죠 (참고기사 _ 사회적 기업이 희망이다 시리즈, 사회적 기업 발전 방향)

 

 물론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역시 사회적 기업의 중요한 기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의 프레임 때문에 일선에서는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위화감과 비슷한 혼란입니다. 인터넷을 찾아 헤매다가 제 마음을 정말 잘 헤아려주는 문구를 하나 발견하게 됬습니다외부 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순수 복지사업과 기업가적인 혁신이 가능한 경우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혼선이 일선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업가적인 혁신이 가능한 경우와, 외부 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경우 둘 다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사회적 기업자체를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사업기반으로 만들어버렸고 덕분에 인증받은 사회적 기업들은 그 지원 기준에 스스로를 끼워맞추거나 성과분석 조차도 일자리 창출에 집중해서 결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더 혼란스러운 일은, 이제 이 프레임에 20대마져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 = 도전적이고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으며 내적 실리를 추구하는 20대들의 좋은 시험장. 이라는 프레임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죠.

 

 청년 실업율이 너무 높다. 딱히 해결할만한 방책이 없다. 수요와 공급의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 라는 수많은 전투 끝에 가져온 것이 청년 사회적 기업가이미지입니다. 저는 절대 현재 청년 사회적 기업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방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허황된 이미지를 조장하는 프레임이 잘못되었다는 점입니다. 지금 정부에서, 혹은 언론에서 여기저기에서 보여주는 사회적 기업가는 흡사 사회혁신기업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띕니다. 분명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Heri의 리서치(08년도 7_국내 사회적 기업가가 말하는 사회적 기업이란…’)를 참조해보면, 사회적 기업의 목적을 사회적 기업가에게 물어봤을 때에, ‘일자리 제공 및 취약계층 자활복지 제공과 관련된 대답이 전체의 68.9%에 육박했습니다. 또한 국가를 대신해 공공 영역에서 사회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대답도 13.5%정도였습니다. 국내 사회적 기업가들이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의 모습은 ‘기업’보다는 ‘사회복지 서비스 제공’이라는 개념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어느정도 깨어(!?)있다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저 같이 무지하고 약간 애매모호한 성향을 띈 20대들이 상상하는 "사회적 기업"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상상 그 이상인겁니다. 


 헥헥…. 기네요. 결국 저는 그냥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었습니다. 프레임에 속아왔던 저를, 그대로 휩쓸려가면서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어떤 현장에 서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를 구박하는 마음도 10% 섞여있었네요. 하지만 아직 정리하고 싶던 내용은 반정도밖에 정리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포스팅은 2편으로 이어집니다. 독자도 없는 포스팅이 1,2편이라니소수이나마 읽어주시는 분들 언제나 감사합니다.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0. 6. 8. 16:20

 제가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특성상, 등기소와 세무서, 공증실, 구청을 매우 들락날락 거리게 됩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지 몇 주 후.. 제일 먼저 깨닫게 된 것은, '어떤 일이든 관공서가 개입되면 늦어진다.' 이른 시간에 찾아가더라도 무슨 문제가 발생할 지 알 수 없으며, 일이 언제 완료될 지 추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리 준비를 완벽하게 해갔다고 해도 현장에 도착해서 막상 민원 접수를 하다보면 여기저기 빈 틈이 발생하게 되지요.
 스트레스를 무진장 받았습니다. 당연하죠. 전 세상에 태어나서 '야무지게 생겼다, 똘망져 보인다'는 첫인상을 이틀 이상 유지해본 적이 없습니다. 엄청나게 덜렁거리고 물건 잃어버리는 건 대다수에 가끔 집 전화번호도 헷갈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관공서에서 무언가를 신청하고 처리하고 그 일을 완료시킨다는 것은 정말 그 어떤 스트레스에도 비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헷갈리고, 전화를 해봐도 대체 뭘 준비하고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지 헷갈리는 게 각종 민원 접수 신청이거든요. 전화했을 때는 없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가서 신청서를 쓰다 보니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사람 환장하는 일이죠. 후딱 잘 해내는 사람들도 많더만 대체 왜! 나의 손은 나의 머리를 따라오지 못하나! 기껏 사무실 임원분들 번거롭게 괴롭혀서 얻어낸 인감증명서 등본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가 'XX 가져오셔야 되요' 한 마디에 허탕치고 사무실에 돌아가는 길 .. 아 아버님은 이래서 그 날 소주를 그리도 드셨누나.. 하는 생각을 하지요. 
 신규 법인 설립, 대표이사 변경, 사업자 등록증 신청, 인감카드 관련된 이것저것, 신고세 납부 등등 .. 을 할 줄 알게 된 지금에도 사실 관공서의 일을 한번에 해내는 답은 없습니다. 그냥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한 번 준비물을 훑어 보고, 전화를 2번 정도 해서 이 준비들로 확실한 건지 확인해보고, 필요 없을 것 같아도 요구하는 것들은 기냥 다 싸가는 수밖엔 없는거에요. 게다가 원래 덜렁 거리는 사람이라면 관련 부처에 전화해서 물어볼 때 전화중 녹음 기능을 요긴하게 쓰구요.

 그래도 갖은 실패 끝에 ... 이제는 기본적으로 서류가 하나 만들어질 때 부가적으로 필요한 애들이 대체 누구인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표이사의 인감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대표이사 인감 증명서 필요하고, 법인 인감은 필수에 혹시 모르니 등기부등본도 들고다녀주고, 사업자 등록증 사본도 원본대조필 꼭 찍어서 가지고 있고. 그리고 꼭! 관공서에서 해당 내용 신청서를 쓸 때에는 앞에 있는 설명을 반드시 참조해서.. 행여 단어 하나라도 마음에 걸린다면 박박 찢고 다시 씁니다. 주민등록등본엔 서울특별시라고 되어있는데 신청서엔 귀찮아서 서울시라고 줄여 쓰고 싶어도 그냥 서울특별시라고 씁니다. 실제로 괜찮겠지 하고 주소 줄여 썼다가 등기소에 가서 보정 다시 하고 온 저로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그 덕택일까요.... 오늘 강남등기소에서 업무를 보는데, 등기소 직원 분이 저한테 이런 일 많이 해보셨냐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서류를 잘 써온 민원인은 정말 드물다며, 아주 깔끔하게 잘 작성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답니다. 무언가 미묘한 칭찬이지만, 그래도 저는 제 나름대로의 성과측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소하고 작은 일, 내가 왜 하고있나 싶고 어디가서 도움이 될까 싶지만. 언젠가는 쓸 일 있으리.. 하고 오늘도 입술 앙당물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0. 6. 6. 13:28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그리고 일본 드라마 리얼 클로즈.
 그야말로 자신의 일에 있어 완벽에 가까운 여성이 나오고, 아직 한참 모자라고 부족한데다 어정쩡하기까지 한 신참이 등장합니다.
 리얼 클로즈에서 내내 들려왔던 대사.
 " 너는 아직도 너 자신이 무슨 옷을 입어야할지 모르니? 거울을 좀 봐. "
 스스로가 무엇이 되고싶어하는지 모르고,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기때문에.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남들이 입는 대로 따라가거나, 혹은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주워입을뿐.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옷뿐만이 아니라 책에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하고.
 " 너는 아직도 네가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니? "
 책을 읽자, 요즈음 책 읽는 대학생들이 줄어들었다는데 독서 열심히 해야지. 취직에도 도움이 될거야. 하는 생각에 도서관에 갑니다.
 하지만 막상 도서관에 들어서서 책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막막한 생각이 앞섭니다.
 대체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엄두가 안나기 때문입니다.
 소설책을 좀 읽어볼까, 하지만 모처럼 왔는데 소설책은 너무 가볍고, 그렇다고 사회과학 책을 읽자니 재미없고.
 자신의 관심사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려해도, 좀처럼 마음이 가는 책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모르니까, 스스로가 어떻게 되고싶은건지도 모르니까 선택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아무 책이나 골라 읽다가 결국 도서관 자체를 가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물론 옷을 어떻게 입어야할지 모르는것과,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는 것에는 굉장히 큰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정쩡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물체가 다 동등한 위치를 가집니다. 선택 자체가 어려운 위치.
 나를 모르고, 그리고 모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선택은 나보다 좀 더 위의 사람들에게 맡긴 채.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