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1. 9. 22. 17:12

 문득 브랜드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퍼스널 브랜드도 그렇고, 기업 브랜드도 그렇고.
 요즘 공간 사업 관련한 프로젝트에 새끼발가락을 살짝 담구고 있다보니 가끔 공부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러다보니 떠오르나보다.

 무엇보다도 퍼스널 브랜드에 대한 생각이 든다. 퍼스널 브랜드란, 사실 이런저런 이론보다도 결국 분위기와 스토리가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그 스토리는 뒤에 숨겨져있고 사람을 처음 마주쳤을 때 압도하는 분위기가, 브랜드와 같다.
 예를 들자면 .. A가 있다. 그 아이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맨 처음 '자유분방함'을 떠올린다. 긴 말을 나누지 않아도 발걸음에서, 제스쳐에서, 의상에서, 표정에서 나타난다. 그 다음, 대화를 나누게되면 '친근하고 쿨한' 느낌을 받는다. 말투와 목소리 톤에서 느껴지고, 말버릇에서 확신한다.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빈티지스러운 매력'을 느낀다. 가방 속에서 멋스런 파우치를 꺼낼 때라던가, 손 때묻은 가죽노트에서. 귀여운 귀걸이가 여행하다가 친해진 할머니한테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고나면 A의 브랜드를 대강 훑어봤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보았을 때 "뭐야, 순전히 외관에서 느껴지는 거잖아"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 앞서 말했듯, 스토리는 내공과 같다.
 A는 '나는 이런 캐릭터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해서 인테리어를 고르듯 의상을 꼼꼼하게 고르는 타입의 아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했고. 그 행동에 의해서 물건을 사거나, 말을 하거나, 특정 제스쳐를 취하게된다.
 그 결과물이 외관에 드러날 뿐, 절대 외관을 그럴듯하게 꾸민다고 해서 자신의 개성도 포장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려면, 우선 생각을 해야하고 주체적으로 선택을 해야한다. 또한 그 선택을 하기 위해 수많은 가치기준을 만들어내야 하며 그 가치기준을 얻으려면 책을 보던가 강의를 듣던가 그딴거 필요없이 어디라도 나가서 경험을 해야한다. 가정교육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깨닫기도 한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생각을 하나하나 완성시키지 않는다면. 퍼스널 브랜드라는 걸 가지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퍼스널 브랜드는 외관보다는 본질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의 머리가, 가슴이 얼마나 채워져있는 지가 핵심이다.

 그 정반대의 경우도 많다. 본질보다는 일단 외관을 그럴듯하게 꾸민다. 상품 포장과는 다르다. 포장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아무리 포장이 화려하고 거대해봤자 누구나 알맹이를 핵심에 두고, 포장은 기억하지도 않는다.
  다행히도 그 대상이 인간이 되었을 때, 본질을 간파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흔치 않다.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본질을 채우기보다는 외관을 그럴듯하게 꾸며놓으면 넘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다. A 역시 시간이 지나 본질을 흘려버리고 외관을 '특별한 것처럼' 꾸미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고, 정반대였던 사람이 어느 날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포장지를 찢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 자신은 가급적이면, 나의 가치관에 의해서 스토리를 만들고 그 스토리가 아름답게 투영되는 외관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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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nsun_
생각2011. 8. 30. 01:08

 2010년 9월달.
 그리고 어제.

 그 동안, 청춘페스티벌, 메디치, 스쿨, 다시 또 청춘페스티벌. 스러져버린 마이크임팩트 살롱, 다시 살리려고 하는 드림페스티벌.
 어제의 원더우먼까지.

 10여명의 그야말로 소규모 교육 컨텐츠인 마이크임팩트 스쿨에서 2000명이 넘었던 나름 대규모의 청춘페스티벌까지.
 단순 서포트에서 PM까지. 기획에서 연출까지. 홍보에서 피드백까지..
 많은 것들의 시작이었고 또 많은 것들의 마무리였던 그래서 더욱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또 그 다음을 생각하게끔 했었던 시간이었다.

 참 알차게 보냈고 그만큼 잃었고..
 어제 바로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에 서보니, 정말 이쯤에서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내가 서있던 위치는 사실 나의 각오 위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지지 위에 위태롭게 한 발을 딛고 있었던 거란 걸 깨달았다.
 나의 역량과 자격요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각오문제였다는 걸.
 그래서 내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채워주고 또 누군가는 그 무게를 나눠 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떠난 바로 다음날부터 두려워질 것이란 걸 알았기때문에 결정을 내리길 주저했다.
 이대로 있다면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높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이제는 그 두려움을 직시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적으로 업무에 지쳐서 내가 상처입거나 힘들어지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의 부족한 각오때문에 내 짐을 나눠 지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내게 더 큰 위협이 될 거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처음엔 그냥 한국에 강연 회사가 이 곳 하나밖에 없어서 들어오게 된 곳에서, 나중엔 깊숙하게 이해하고 개입하게 되면서
 벤처와 강연, 그리고 더 나아가 문화 컨텐츠 시장에 대한 생각까지도 품게 되었다.
 나의 장점이나 단점, 적성에 맞는 일이나 이런 건 아직도 모르겠는데 어째 핀트가 잘못된 거 아닐까?
 여하튼 내가 얻은 만큼 충분히 돌려주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 지 모르겠다. 남은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일텐데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학생으로서의 스테이지도 이제 좀 있으면 마침표를 찍게 된다.
 막막하고 무섭지만 결국 또 어떻게든 되겠지. 



 일년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이크임팩트에서 일해서 (힘든 만큼) 즐거웠습니다. :) 


  
Posted by moonsun_
생각2011. 8. 15. 13:48

벤처 기업에서 일을 하다보면 사실 가장 많이 봉착하게 되는 상황은 '답이 없다'고 무심코 얘기하게 되는 상황인 것 같다.
언제나 마주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에는 자료도 정보도 시간도 부족하며, 인력또한 없다.
분명히 잘 될것이라 생각하고 그만큼의 준비를 해서 내놓은 상품이, 뚜껑을 열고보니 전혀 소비자들의 반응이 없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디자인이 구린가? 홍보 채널이 부족했나? 컨텐츠가 별론가? 사실 알고보니 전혀 니즈가 없는 시장이었나? 준비 기간이 부족했나? 리더쉽의 부재인가? 팀원의 역량이 딸리나? 가격이 너무 비싼가? 아 내가 진짜 이럴 줄 알고 하지 말자고 했는데 대체 왜 이걸 만들어서 이렇게 안팔리는 책임을 가져가야하는거야. 

떠오르는 문제점 들 중에서 '그래, 그 부분이 부족했네' 하고 깨달아도 이미 시장에 내놓은 상품은 되돌릴 수 없다.
가격을 반 값으로 깎아봤자, 커뮤니티에 미친 듯이 글을 업로드 해봤자, 지인들한테 알음알음 구걸해봤자..
여기저기에서 제기하는 문제점은 이토록 많은데 해결할 방법은 없고, 결국 " 우린 메가스터디가 아니니까 " 하는 소리나 내뱉게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진짜 내가 생각해도 이게 아니다 싶을 때, 그런 때에 " 답이 없다 " 는 말과 함께 멈춰버리면
결국 그 상품은 거기에서 멈춘다. 내 자신의 발전도 거기까지가 끝이다. 내가 속한 조직 또한 마찬가지다.
이 상황이 엉망이라고 생각해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한다.
무대포로 어떻게든 해보자, 라던지 될 때까지 가보자! 하는 헝그리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벤처에서는 누구도 날 대신해서 걱정하거나 나의 공을 가로채려고조차 실행해줄 사람이 없다. 지금껏 쌓아온 DB도 빈약하고, 주위를 둘러봐도 다 고만고만할 뿐 사실 '슈퍼스타'는 그 어느 기업에도 쉽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누군가 거뜬하게 풀어버리는 현실은 없다. 
오히려 내가 멈추면 조직도 함께 멈춰버린다. 그게 벤처고 그래서 생동력있다고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자인 사람일수록 이런 환경을 버텨내질 못한다. 좀 더 준비하고, 생각해서, 판단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시점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일단 한 번 '던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소비자를 능욕할 정도로 엉망인 컨텐츠가 아니라면, 파일럿팅으로라도 일단 던지고 봐야하는 이유는, 부딪쳐보지 못하면 아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시장속에 사는 게 벤처이기 때문이다.
작고 강하게 뛰어들어서 스스로를 다듬고 또 다듬어나가는 것. 날카롭게 파고들어 문화에 스며드는 것. 
그러려면 아무리 내 스스로가 엉망이라고 생각해도 어렵게 어렵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를 믿거나. 우리를 믿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00m도 아니고, 빨리 달리기도 아니다. 단지 한 걸음이다.
가끔 최악인 상황에서 그 한 걸음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것 같이 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무겁고, 이제 도망가고 싶고. 
그러나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 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분명히 있다.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만두거나. 아니면 방향을 틀거나. 떨어지는 자투리를 모아서 향후의 큰 힘으로 가져가고자 하거나. 

언제나 그렇지만 .. 최악의 상황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Posted by moonsun_
감동받은 모든 것2011. 8. 1. 22:35
열정은어떻게노동이되는가한국사회를움직이는새로운명령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한윤형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상세보기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내게 있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책 제목이 내가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던 질문이었고, 그리고 요즘 들어 더더욱 의구심을 품게 되었던 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21세기 시대에 열정만큼 긍정적인 단어가 없는데, 그게 노동만큼 부정적인 단어와 합쳐지다니.

책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계,사람의 숙련도,조직 관리 등 사람의 '외부'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다찾다못해 이제는 사람의 '내부'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 도구가 바로 '열정'과 '꿈'이라는 것이다. 이 엄청나게 쉽고 편리한 도구인지? 눈에도 보이지않기에 닳을 염려도 없고 모두가 각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천 명 중에 한 가지, 아무리 희소하다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사람들이 가치있게 느끼니까.
네가 지치고 아무리 달려도 상황이 나아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네가 좀 더 노력하지 않았고 열정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해석할 수 있다. 시스템을 고칠 이유도,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기계를 버릴 일도 없다. 그저 네가 좀 더 열정을 지니고 도전하면 언젠가는 네 꿈이 이뤄질 것이다.
뭐, 안되면 말고. 네가 일만 시간 중에 10분을 빼먹고 도전했나보지.

책을 읽으며 내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라는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의 고생도, 저렴한 수입도, 처절한 복지환경도 모두 스킵해버린다. 돈을 안 주고, 복지가 취약해도 알아서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노동자는 그 어떤 자본가도 꿈꾸어보았을 세상일까? 

나는 스스로가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며, 도전하는 이들의 정신을 매우 존중한다.
그런 이들이 지금까지 '또라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세상을 바꾸어나갔기에 이 세상이 그래도 이나마 지탱하고 있으며, 부분이나마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반감을 가지는 것은 그런 이들이 아니라, 나처럼 알 수 없는 열정의 급류에 휩쓸려서 떠내려가다보니
이제는 내가 정말 '열정'을 지닌 것인지 아니면 다분히 세뇌되어 버린 지 알 수 없는 어딘가에 버려져 있는 영혼들을 이용하고 휘두르는 존재들이다. 

꿈을 이용하고, 열정을 이용하고. 어느 새 꿈은 수치환산이 가능한 목표치 내지는 직업의 대명사로 쓰이며 열정은 끝없는 노동시간, 즉 스스로의 살을 깎아먹는 시간과 동일한 뉘앙스로 쓰인다. 열정 또한 '증명'해야 하는 스펙이 되었으며 도전,리더쉽,친화력 등등도 스펙으로 증명해야 하는 하나의 수치가 되었다.
더 이상 돈을 바라는 이에게 충분한 돈을 줄 수 없고, 충분한 행복을 줄 수 없자 준답시고 주는 게 마쉬멜로우 정도다. 

이 책에서도 역시 답이 없다고 이야기하듯이, 사실 다른 어디로 갈 곳이란 없다. 다만, 스스로의 열정이 무엇이었는지 자문해보고 나의 삶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나의 선택으로 인해 이뤄졌는지 찬찬히 점검해볼 수 밖에 없다. 나에게서 출발한 가치로 남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내고 다시금 더 큰 가치로 진화시켜 나가는 것 .. 이렇게 어려운 일이 없는 데 요즘은 마치 유행처럼 이 곳 저 곳 창업 열풍이다. 
과연, 나의 열정은 진정 열정이었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한 노동이었는가. 
 
Posted by moonsun_
생각2011. 7. 4. 23:44

최근, 내가 매우 실망하게 된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글을 하나 하나 읽어가며 그 사람에게 많은 공감을 하고, 이윽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대부분이 옳으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나의 방향점으로 세워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나의 접점은 좀처럼 없을 것이라 믿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또 직접 보게되었다. 그리고 곧 실망했다. 일관된다고 믿었던 그 사람의 철학은 뒤죽박죽이었고, 자신이 글로 이야기했던 많은 부분들은 그저 글이었을 뿐 실제 행동은 매우 달랐다. 

참 어리기도 하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이 사람이라면 하는 말의 80%는 옳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방향점에 세워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번 무한도전 가요제를 보면서 김태호 PD를 또다른 방향점으로 세워뒀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 사람이 '옳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내 취향에 맞을 뿐이다. 그 사람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과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럼 그 때에 나는 억지로 이 사람이 선택했으니 옳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역시 이 사람도 아니였다며 실망하게 될까?

다른 사람을 방향점에 세워두게 되면 나는 내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 사람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무슨 근거로, 어떻게 그 선택을 도출해내었는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선택한 상황 자체'만 떠올리고 따라한다. 그러다보면 이윽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의 선택을 믿는 것과, 그 사람이 옳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나와 그 사람을 분리할 수 있고, 후자는 나와 그 사람을 분리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내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온전히 내 스스로의 마음으로 선택을 해야한다. 그래야 나의 발자국으로 길을 걸어갈 수 있고,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오직 나 하나만 탓할 수 있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된다고, 누구의 말도 듣지 말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남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한 위태롭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결국 선택만큼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Posted by moonsun_


4월 25일부터 5월 27일까지.. 내 하루의 거의 70%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꿈에서도 나왔던.. 청춘페스티벌이 끝났다.

조직 내에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로 인해 나의 위치에도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아니. 인지하기 위해서 청춘페스티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치 상처를 봉합하듯 팀이 꾸려졌고, 서로 약간은 힘들게 업무를 분담했다.
그 시기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걱정과 압박을 눈으로 볼 수 있게 가시화한다면 .. 아마도 엄청나게 어두운 구름으로 가득찬 밀폐된 방을 떠올릴 수 있겠다. 나는 갇힌 느낌이었고, 도무지 이 곳을 나갈 방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그 구름들은 내 눈을 가릴테고 그럼 나는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방은 넓었고. 나는 앞으로, 앞으로 가다보니 조금씩 계단도 찾고. 유리창문도 찾아서 열고, 불 꺼진 냉장고에서 미지근한 물도 꺼내 마시다가 .. 넘어지고. 더 이상 무서워서 앞으로 가고 싶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내'가 행사를 리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찾아내자면 수십가지도 더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행사 현장에서 단순한 자원봉사자 이상으로 일해본 적이 없었으며, 연출 관련된 업무는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었고. 그동안 관심 자체를 떠나 지식도 없었고, 조직 외부의 다수와 협업하여 완성된 컨텐츠를 만들어내려고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나이는 너무 어렸고, 가격을 낮추는 등의 협상은 너무나 쥐약이라 가급적 피해왔었다. 이미 에너지는 고갈되어 있었고, 아이디어를 잘 생각해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난 긍정적인 성향도 아니고, 오히려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100명 200명 오는 것도 아니고 몇 천명에 가까운 사람을 모아야했고, 그리고 또 그 사람들에게 '최악'은 아닌 평균 정도 수준의 행사를 만들어주어야 했다. 다른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자리에 있어야만 했고, 그런데 내가 앉아있는 그 나의 자리는 정말정말 높아서 ..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내 스스로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점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뭘 믿고 나아가야 할 지를 모르겠었다.

그저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바보같지만 음향 기기 리스트를 보면서 해당 기기의 이미지를 다 찾아서 PPT 파일로 만들었다. 단막 트러스가 무엇인지, 흔히 돌돌이라고 불리는 리드선은 대체 왜 필요한 건지 하나도 모르겠으면 인터넷을 찾고 주위에 물었다. 이 지경이면서도 행사를 준비하겠다는 내가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아저씨들 만나기 무서웠다.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을 수십번 했다. 누군가 대신 이 자리에 서줬으면, 나는 그 뒤에 서서 배우고 나서 적어도 이년 쯤 후에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수천번 했다.

그 무서움이 극에 달했을 때 ..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땅에 떨어졌을 때.. 더 이상 뭘 믿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마음 속에서 아무리 책임감을 긁어내어도 쥐톨 하나 손에 잡히지 않을 때 ..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입 밖에 내밀었다. 
엄청나게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리더로서 절대 꺼내지 말았어야 하는 이야기를. 행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꺼내어놓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나 혼자만의 방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밀폐된 방에서 미지근하나마 물도 꺼내어먹고, 작긴 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유리창문을 열고, 내려가는 계단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은 내가 나 혼자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 때가 다 되서야 알았다.
까만 구름에 가려서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내 손을 잡아주고 있는 사람도. 먼 곳에서 가져오느라 식어버린 물이나마 넣어놓는 사람도.
열심히 유리창문을 넓히는 사람도, 계단을 만드는 사람도 보질 못하고.. 
그리고 그 방은 나의 방이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지탱하고 있었고, 또 넓히고 있었던 우리의 집과 같았다.

정말 유치하지만.. 그리고 행사가 끝난 이 순간에야 느끼지만 ..
내가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수십가지나 되고, 그 이유들을 모두 따져보면 결국 행사는 만들어질 수 없겠지만 ..
'우리'가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는 거였다. 

나는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었던 거였다.

솔직히 행사가 끝나는 순간, 클로징을 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그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고 기쁨으로 충만한 그런 영화같은 감동은 내게 없었다. 
내 눈엔 아쉬운 점이 수없이 가득했고 또 초기에 세운 목표치에 해당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초라한 성과를 낸 행사였다.
그래서 끝나는 순간이 또다른 고통의 시작일 수 밖에 없는 행사였다.
내가 또 다시 행사를 할 수 있을 지 조차 모르겠다. 

그렇지만 청춘페스티벌을 준비하며 내가 얻은 수많은 업무적인 스킬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드디어 전화업무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떨쳐냈다는 그런 소소한 기쁨들 .. 보다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될 생각은.
나는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막연히 긍정적인 확신이 아니고. 대책없는 자신감의 발현도 아니다.
이런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는 엄청난 전제조건들과 수없이 많은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우리의 행사가, 끝났다.
아마도 다시 없을 것이다. 처음이어서 더 힘들었고, 더 영롱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석처럼 아껴두어야 한다.
유일무이한 우리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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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nsun_

 어제는 렛츠 스튜던트 행사에 다녀왔었다. 느낀 점은 많았지만 .. 나도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입장에서 그 노고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더 이상의 코멘트는 생략한다 -_-; 
 렛츠 스튜던트에는 영상, 미디어 아트, 디자이너, 전자공학, 뮤지션,개발자 등의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와 같은 경영학도이면서 기획 자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드문 듯 했다. 특정 대학이나 특정 과에서 추천을 받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 또.... 이유가 있었으려나? 여튼간 그랬었다.
 산업 디자인 관점에서 본 UX, 다양한 창작툴 등의 '지식 나눔'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질의응답을 들으면서 .. 나는 언제인가부터 내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약점을 자각했다. 내 지식에는 깊이가 없고, 경영학도로서는 매우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무언가를 '기획'하면서 자신감을 가졌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아주 솔직히 얘기하자면 .. 진짜배기 기획자를 제외하고는 기획자란 사람은 결국 논리적으로 말장난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 순간이 내게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미래.....? 
 차라리 디자인, 엔지니어, 개발자와 같이 진입장벽이 높은 스킬을 지니고 있거나 .. 그게 아니라면 뮤지션, 화가, 소설가처럼 자신만의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서 경영, 마케팅, 기획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비해 나는 한 없이 부족한 존재가 아닐까? 
 내가 플랫폼 사업이랄지, 동기 부여 전문가랄지의 존재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의 무력감을 자극시키기 때문이다.
 
 조금 더 .. 생각 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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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nsun_
생각2011. 4. 25. 23:52

행동해라, 행동해라, 행동해라 .. 이 세상은 온통 행동하고 도전하라고. 꿈을 찾으라고. 꿈이 없으면 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뭐라도 꺼내서 어쨌든 해보라고 닥달한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거나, 혹은 옳다고 강조하거나. 상대방을 뛰어넘거나. 
무언가 가치 있는 걸 만들거나, 아니면 내 스스로 가치를 득득 긁어모으라고 이야기한다.

요즈음 이 세상은 무언가 정신나간 것 처럼 사람을 들볶는다. 밤 12시에 자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미친 자명종을 여덟번 정도 끄고 일어나 씻고 신문을 읽고 상쾌하게 집 밖으로 나온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온통 부대끼고 끊임없이 이게 어떤 결과를 가져 올 지 5초 만에 생각하는 선택을 내린다.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 지 생각할 여유 조차 주지 않는다. 멈추면 죽어버리는 것처럼 몰아가고 벽을 하나 넘으면 그 다음의 벽을 넘어야한다. 이유는 없다. 뭔진 모르겠지만 남들만큼 살거나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하루에 한 , 두 명밖에 없지만 나는 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또 누군가가 이 글을 읽길 바란다.
지긋지긋하게도 사람 사이에서 지낼 수 밖에 없는 생이다.

이게 옳은 지 그른 지는 언제인가부터 따지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는 데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윤리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다면 길거리에 작은 휴지를 몰래 버리는 정도는 내 마음에 크게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을 아예 마음 속에서 소거해나가는 것이 마치 나이가 든다는 것과 동일시된다.

내가 뭘 만들고 있는 건지, 내 삶이란 대체 뭐란 말인지. 온종일 선택 속에 몰아넣어져서 경계를 바짝 세우고 ..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과 근거 모를 도전정신과 귀찮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그야말로 '남들을 위한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는데.
복잡미묘하네요, 애매하네요, 어렵네요, 등등 ..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띄지 못하는 공허한 말들만 사용하고 있다.

임계점, 힘들다, 극에 달했다, 이젠 힘든 것 조차 모르겠다는 표현들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하고 허공속에 떠다닌다. 그냥 그 말을 뱉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입으로라도 말해서 스스로에게 자각을 시켜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가치있는 걸 만들어내지 않으면 내 삶은 가치가 없는 걸까?
수백개가 넘는 가이드라인이 싫어서 헤매였는데, 결국 또 그 안에 틀어박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걸까?
도전하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보다 잘나지 않으면 나에겐 이용 가치가 없는 걸까?
모든 기준 잣대를 'XX 하면 성공한다, XX하면 실패한다' 고 생각하며 사는 게 과연 나의 생존 목적일까? 

잔뜩 오기로 똘똘 뭉쳐서..
한 순간이라도 멈추면 질 것 같아서 ..

끊임없이 나의 상품가치를 만들어내려고 ..
내 스스로가 상품이 되고 .. 아니라고 발버둥쳐도 난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성공공식에 끼워맞춰보고 .. 



 
Posted by moonsun_
감동받은 모든 것2011. 3. 20. 19:04

 우리 엄마는 그림을 그린다. 1년 3개월 째, 서양화를 그리고 있다. 
 워낙에 글도 좋아했고, 책도 좋아했고, 역사에서 시작해서 경제학, 철학, 음악, 과학까지 다방면에 관심이 깊어 관련 주제로 한 번 이야기하면 1시간은 우습게 이야기할 정도로 지적인 분이라 처음엔 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냐고 물어봤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어느 덧 하루에 5시간 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일년이 훌쩍 지났다.
 
 집안에 물감 내음이 나고, 여기저기 그림책이 돌아다니고, 어느덧 개인전은 아니지만 첫 단체 전시회도 열었다.
 엄마는 원래도 아는 게 많았지만 그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지금까지 엄마가 생각해왔던 모든 학문들을 미술과 관련해서 녹여내기 시작했다. 한옥에 대한 생각, 붓꽃의 모양, 장미의 구조 ..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나를 보며 요즘 들어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예술가로 산다는 건 삶을 정말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었다.
 예술을 업으로 삼는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 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지는 나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다만, 예술을 아끼고 그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지 놀라고 있다.

 사람이 왜 자연스러운 것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지.
 시끄러운 차소리가 아니라, 새소리, 물소리, 향수가 아니라 그냥 맑은 공기, 풀냄새. 인공적인 흰 색이 아니라, 조금 누런 창호지 색깔.
 잔뜩 자극적인 맛을 내는 음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쾌한 상추.
 
 나는 굉장히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더러운 거 싫고, 태양 아래 그대로 노출되는 거 싫고. 벌레도 싫어하고, 몸이 고생하는 거 정말 딱 싫다. 하지만 자연스러움 안에 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니까, 예술은 내게 가끔 사람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온통 자신을 강조하려고 자신의 생각을 억지로 밀어넣는듯한 옷이나 화장, 말투, 목소리 .. 
 그 안의 숨통을 틔워내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예술이라고 생각된다.

 좀 더, 내가 그림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진도, 음악도..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moonsun_
생각2011. 3. 13. 21:51

 요즘의 나는, 어렵다 고 자주 말한다. 그리고 그건 안된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의견을 냈을 때, 그 의견에 관해 5초 정도 생각해보고 반박한다. 남들이 너무하다고 말하면 나로서도 할 말은 있다. 이미 나도 생각해보았던 부분이었고 이러저러해서 안되었기 때문에 반박할 수 밖에 없어진다고.
 그 반박에 상대방이 또다른 해결책을 내놓으면 솔직히 럭키!다. 기쁘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은 침묵한다. 내가 너무 강하게 반박해서그런 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내가 막혔던 곳에서 똑같이 그도 막혔기에 내가 질문을 던지며 반박했을 때 조용해지는 것일테다.
 
 스스로 너무 부정적인 표현들을 많이 쓰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 내가 안된다고 부정적으로 말했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잠시 긴장을 놓은 순간 ' 그건 이래해서 안되요, 저래해서 어려워요' 라고 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나 스스로도 답답하다.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한 번 검토해보고,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적용하고 덜어내야 할 부분은 덜어내고 싶다. 그렇지만 .. 아예 날것인 아이디어 자체는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하다. 그저 우리 지금까진 노랑색으로 해왔는데, 이젠 파랑색으로 해볼까? 식의 이야기이다. 왜 파랑색인지, 노랑색이 싫은 이유는 뭔지. 깊은 고민과 생각이 들어간 게 아니라 그저 그동안 파랑색이 싫어, 왠지 느낌이 싫다... 바꿀 순 없나 하는 걱정이 들어간 후의 아이디어란 이런 식이다.
 한 번 정도의 반문으로 막힐 아이디어라면 처음부터 이야기하지 마! 하는 식으로 대하고 싶지 않다. 나 스스로도 언제나 마음 속으로 수만가지 물음들을 하고 답을 했다가 그 답에 대한 물음을 하게 되고 거기에 답하다보면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고 안나올 때도 있다. 마음 속으로 뺑뺑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아웃풋이 안 나올 때도 있다. 좋지 않다. 나쁜 결과다.

 일단 한 번 해보자, 이 결단조차 사실은 수많은 생각 속에 나오게끔 되는 말이다. 한 번 해볼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상황이 확실하게 계산되었다면 그대로 가는 거고 만약에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 조차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농담으로라도 그 말을 꺼내서는 안된다.
 
 나는 진지하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대할 때 이런 태도를 취하는 지도 모른다. 적어도 가볍게 이야기한 말에 이 쪽이 하루 종일 머리를 굴려서 안된다, 고 이야기할 정도라면 상대방도 제발 이 정도의 진지함은 이해해주는 예의를 차렸으면 좋겠다. 단순히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바꿀 순 없다. 심플한 게 제일 좋다고들 하지만 그 것을 만드는 과정 까지 심플하진 않다. 심플해보이는 투명한 하얀색을 만들기 위해 수백개의 흰 색을 비교하고 그 색을 바르는 두께 여부를 결정하고 어디서 말려야 가장 투명한 빛깔이 나올 지 끊임없이 자잘한 고민과 시도들이 기반 되어야, 그 후에 우리의 눈에 심플한 흰색의 가구가 완성되게 된다.

 세상에 진짜 쉬운 일 하나 없다. 그래서, 한 번에 오케이 나는 아이디어나 생각도 없다. 우리는 진지해야한다. 이 사람이랑 사귀어도 될까 말까도 한달 넘게 고민하는 판에 평생을 함께 할 지도 모르는 프로젝트에 있어서는 왜 이다지도 가벼울까. 
 그렇지만 이 말조차 내가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이유가 되진 못한다. 난 좀 긍정적이어야 한다. 
Posted by moons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