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4. 3. 18. 22:58


잘한다는 건 어떤걸까?

내가 특정한 일을 잘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주위의 10000명보다 나아서?

10001번째 만난 사람이 나보다 잘한다면

그럼 나는 이제 두 번째로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근데 그 다음에 만나는 사람들이 줄줄이 다 나보다 잘하면..?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백번째 백한번째 -_-;


항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던 것 같다. 요즘은 더더욱. 

한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다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들어도 성취감이 크다거나,

아니면 잘하는 일을 좋아하게 된다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전혀 관련이 없다거나.

수많은 가설이나 이론들 속에서

사실 나에게는 어떠한 업무건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오히려 근무 환경이나, 사람에 따라 달랐지. 


그리고 또 그런 생각도 든다.

90%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 있고,

90%의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의 종류가 분명히 있다.

그 일을 해보았건, 해보지 않았건.

우선 사람들의 머릿 속으로 판단했을 때 그렇다.

내 동생조차 그렇게 목놓아 외치는 '기획'이라는 일도. 해보면 오히려 싫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 


나는 내가 해보고 '싶다', 거나 '좋다' 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래왔던 건 아니고

오히려 어찌 보면, 머리가 나빠서일 수도 있고

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선뜻 내가 무엇을 잘한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걸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지?

내가 속한 그룹의 상위 10% 안에 들면 잘하는 걸까?

그럼, 그 상위 10% 만 모여있는 그룹 안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좋아하는 일은 다를까? 그 일을 내가 잘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냥 무언가를 잘한다는 라벨을 내게 붙이기가 어려워서,

일단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생각을 포기하면, 살아지는 데로 산다는 문구가 있다. 

지금껏 내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너무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뿌리가 없이, 깃털보다 가벼운 말들만 늘어놓으며 살아온 건 아닌지. 




Posted by moonsun_
감동받은 모든 것2014. 2. 16. 11:55


분명히, 대림미술관에 가서 그렇게 재미있다는 청춘 사진전을 보려고 했는데

토요일 오후 3시였던 탓인지 사람들이 미술관 밖으로도 100명은 넘게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덕수궁 미술관으로 향했다.


한국 근현대사 미술 작품... 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사실 미술 교과서에서 생각나는 거라곤 딱 한 작품뿐인 이중섭의 <소>정도 보고 나와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다 보고 나와보니 소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이인성 <해당화>



제일 먼저 마음을 잡아끈 것은 해당화라는 작품이었다.

모든 것이 따뜻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가운데 소녀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소녀들의 옷과 해당화는 정말 동양스러운데, 전체적인 색깔이나 형태는 서양스러운 느낌이 난다. 내가 뭘 알겠느냐만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정면에 있는 소녀에게서 느낀 것은 슬픈 느낌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공간에 있으니 행복할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슬퍼보인다.


이인성은 '향토적 서정주의'를 완성한 화가로 불렸다고 한다. 

쉽게 풀어보면 당시 서구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에 영감을 받고 그 표현 기법들을 사용하되

배경이나 소재를 한국적 토속성을 지닌 대상들을 사용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붉은 색조로 잔뜩 강렬하게 그려낸 다른 작품들이 많았지만, 난 해당화 하나만 마음에 들었다. 

특히 해당화의 경우, 사람들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해방을 기다리는 꽃'으로 당시에 많이 이용되었고

이 작품의 경우에도 소녀가 해방을 기다리고 있다는 해석이 달려있는 듯 했다.


내가 느낀 슬픔이 과연 해방을 기다리던 소녀의 마음이었을지,

아니면 나의 불안한 마음을 투영한 건지는 이인성 화가만이 알겠지. 분명히 내 감정을 묘사하고 있는 건데도 더 쓰면 오글거릴 것 같아..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가지>


정작 이 작품이 거기 전시 되어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다만 내가 김환기 화가에 대한 느낌으로 '색감'이라고 적어놨기에 찾아보니.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김환기 작품에서 마음에 드는 점으로 색감을 꼽고 있는 듯 했다.

파스텔톤이고, 우리가 보통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파란색을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한다.

한참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게 될 만큼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도, 호감간다. 

그림을 상대로 호감간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사실 나처럼 사람들이 색감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 작품들은 김환기가 추상주의를 어느 정도 완성한 이후의 작품들이었다.


원래 초반에는 이 <종달새 노래할 때> 라는 작품처럼 서구의 입체주의를 이용해 자신만의 추상주의 화풍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이 과정을 거쳐 60년대에 들어와서 동글동글한 항아리, 매화와 같은 한국적인 소재들을 푸른 색감으로 나타내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60년대 후반에는 아예 점묘 등의 추상주의 작품들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추상주의 화풍을 완성시킨다. 

그림을 찾아서 넣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김환기 화가는 알 수록 더 흥미로워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동양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가장 동양스러운 그림이 가장 세계적인 그림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한 내용이 기사나 전시회에서 많이 이용되던데..


사실 1950년~1960년대 우리나라 화가들이 느꼈던 딜레마가 그들의 작품 속에서 느껴진다.

서구의 화풍에서 영감을 얻지만, 한국의 그림이라는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고민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동양적인 소재를 후기 인상주의 식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하거나

아예 모든 형태를 다 분리해버린 상태에서 동양적인 색감을 살리거나.. 하는 고민들이 느껴진다.

그래서 전시회는 1920년 ~ 1970년이라는 시대의 작품들을 모두 다루지만,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건 해방 이후 작품들이다.


어렵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작품과 좋아하는 작가들을 조금씩 조금씩 공부하고 늘려나가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겠지.

다만 나도 미술에 있어서 무식하다보니까, 어려운 개념어들로 작가나 작품들을 해석한 글들로 공부하게 되고 또 그 개념어들로 쓸 수 밖에 없다는 게 좌절.. 나만의 순수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려나; 



Posted by moonsun_
나는 어떤 사람일까?2014. 1. 22. 21:38


고민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과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은 정말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끌어다쓰는 변명 거리들 아닐까?
왜냐하면, 나는 그걸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니까. 그.. 자기합리화.

그리고나서 든 생각은.
아.. 내가 지키고 싶은 게 생겨버렸구나..
보통 나는 이 정도로 지키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워낙 나란 사람이 게으르고 에너지 쏟는 걸 귀찮아하기 때문에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대로 내버려두거나 도망가거나 그랬다.

근데 지금 나한테는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그 지키고 싶은 것들이란 게, 과연 내게 있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 의문만 가져다주는 것들이란 점이다.

예를 들자면 고작 1년 동안 쌓아온 이미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도, 아주 긍정적이지도 않지만 편하게는 대하는 단체,
예상 가능한 업무들, 너무 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일련의 일들.
지금의 내가 은연중에 지키려고 했던 것의 정체가 바로 얘네들인데.
사실 한순간에 또 바뀌어버릴 수 있는 것이 얘네들이다.

무엇이 내게 더 중요할까?

선택이나 결정을 내렸을 때에, 그 결과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일단 결정한 이상 내가 어떻게든 그 이후를 만들어갈 뿐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결국 내가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거고.

알면서도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주체성을 논할 자격이 나한테는 단 0g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바뀌어버릴 지도 모르는 것들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이런 저런 발악을 하는 게 과연 내게 옳은 일일까?
나한테 잘하고 있는 짓일까?

입사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나보다.
그 전에 있었던 소극적인 기질이 더 극대화된 걸수도 있고.
누군가 나를 '선택'해주었고, 그 존재 자체에 의존하거나 혹은 그 존재 뒤에 숨어서 내 몸 값을 올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다시 결정을 내려야만 하고 책임을 져야만 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데에 벌써 지쳤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벌써?
언제부터 이런 의존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내가 나를 믿기 위해서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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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nsun_
생각2014. 1. 18. 16:58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즉 나의 취향이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혹은 내가 선호하는 가수를 당신도 좋아하는지,

이런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요즈음 내가 듣게되는 대부분의 SNS 서비스.. 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출발지점이 이 욕구인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욕구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하면 저 '보여준다'라는 지점을 사람들에게 잘 노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느낌.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말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를 듣고 싶을까?

물론 내가 팔로워가 몇 천명이 넘어가는 슈퍼스타라면 또 다른 문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말할 때누군가는 '듣고'있어야 대화라는 게 성립되는거고,

사실 대부분의 SNS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탄생한 서비스들인데..


어쩌면 나는 내가 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로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Posted by moonsun_
story of U2014. 1. 15. 23:56


너무 비판적인 게 아닐까?

너무 부정적인 게 아닐까.

모든 것들에 너무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경계선에 서있는 건 아닐까.



온통 '아닐까'의 늪에 빠져있는 듯 하다.

사실은 이런 표현 자체가 자꾸만 스스로를 경계선에 선 '제 3자'의 위치를 유지하고 싶다는 희망을 뜻하겠지.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뒷걸음질 치지도 못하고.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까지도 누군가 등을 밀어주길 바란다.

필요한 건 아주 단순한 단어일지도 모르는데. 



Posted by moonsun_
생각2014. 1. 4. 23:07


아이디어던,

사람이건.

'성공했다' 라는 것은 결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 한해서일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과정으로만 이뤄져있다.


그 괴리가 사람들을 삶의 끝까지 밀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moonsun_
나는 어떤 사람일까?2013. 12. 29. 19:48


언젠가부터인지 선택과 소비의 경계가 흐려져간다는 걸 느낀다.

서랍장을 사야겠다, 라고 필요를 느껴서 사겠다는 결정을 한 후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서랍장을 보고선 '머플러를 넣어두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구매하는 식이다.

무언가가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산다는 행위 자체를 하고 싶어서 그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물욕 자체가 크지 않고, 무언가를 모으는 것도 계속해서 꾸며나가는 것에도 취미가 없던 내가 이렇게 과소비를 한다.

수많은 심리학책이나 마케팅 책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사실 돈을 써서 소비할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때 가장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실감나고, 이 물건을 삼으로써 내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사실은 좁아터진 방 한칸에 아무런 쓸모없는 물건이 늘어나는 것 뿐이다.

오히려 소비하기 이전보다도 더, 덜 떨어진 인간이 된 셈이다.


허무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 허무함을 메꿔보려 물건을 산다.

아니면 그 허무함을 채워보려 맛있는 걸 먹거나,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점점 더 비어가는 걸 느낀다.

내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 이 세상은 어떤 구조로 돌아가고 있을까, 저 식당의 뒤에는 어떠한 논리가 있을지, 그리고 저 행사를 만들기까지 무슨 노력을 했으며 과연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 사람은 왜 그런 생각을 했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수많은 궁금증들. 그 궁금증들을 풀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대화를 했다.

그런 순간들이 즐겁거나 행복하다기보다도 그냥 그럴 때 내가 살아있음을 정말 자연스럽게 느꼈다.

'내'가 궁금해했고, '내'가 답을 찾아보는 순간들이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집단에 스며들고자 하고, 남들이 그건 아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놓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내 의견을 바꾸거나, 

급기야는 아예 생각 자체를 멈춰버린다.


나는 아무 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내 생각 자체가 없으니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저 yes or no 이거나 결론이 있는 논설문 같은 이야기나 할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궁금해하며 이어나가던 대화는 더 이상 없고

그저 모래가 파도에 흘러가듯 흘러가버리는 이야기들이 남았을 뿐.


어느 시점 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글 쓰기를 그만둔 때부터였는지, 아니면 이 상태에 편안함을 느낀 때부터였는지.

물어보고 대답하고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내가 까칠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아니면 허세부리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그것이 내가 삶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던 방법이었다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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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nsun_
생각2013. 11. 30. 17:20


진짜로,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가식적인 SNS를 혐오한다, 마치 일상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듯한 SNS가 싫다'는 식의 고충을 토로한 신문기사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올라왔던 적이 있었다.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이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우울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SNS를 시작한 거였을 텐데

오히려 글을 쓰면 쓸수록 다른 사람의 LIKE 수를 보면 볼수록

차라리 혼자 있었더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을 외로움이 더 짙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셜'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슨 서비스를 만들던 심지어 냉장고에까지 SNS를 접목시키려고 하는 시도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마구잡이로 서로를 엮으면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서비스였을까? 하는 불만을 품곤 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게 게임이든, 드라마든. '일단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뭐라도 만들어놔!' 하는 느낌이

우리의 외로움을 치유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나마 요즘 잘 나간다 싶은 기능을 달아놓는 기계적인 의도라서 싫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24시간 누군가와 쉴새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혼자서만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맛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먹으면서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 흥분되는 마음으로 카톡을 보내고 싶어지기도 하고.

예쁜 풍경을 보면 그냥 주위에 힘들어하던 친구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진다.


SNS라는 건 사실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었을텐데.

어느새인가 흘러넘치는 메세지와, 사람들 속에서

오프라인과 똑같이 시끌벅적한 대로에 혼자 서있는 것 같은 우울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해답이 폐쇄형 SNS일지.

아니면 1:1로 대화가 가능한 메신져일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SNS를 활발히 하는 사람이건 아니건간에

우리는 방 안에 홀로 앉아 행복함을 느끼기보다는.

모니터를 통해서라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그 마음을 헤아리고 채워주는 서비스가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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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nsun_
생각2013. 11. 19. 22:21

 

어느 단체를 가든, 어디에 있든

한 번씩 혹은 깊게 고민해보곤 했던 화두였던 것 같다.

인간관계 문제가 아니라,

'이 곳의 문제'가 나로 인한 건지. 아니면 이 곳의 문제인건지

항상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이 곳이 내가 못하게끔 만드는건지.

그 갈래길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떠나보면 알겠거니 하고 떠나곤 했다.

그렇게 떠날 때마다 어디에선가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체하면 똑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내'가 문제였던 거겠지.

하다가도 돌아서서 그 곳을 바라보면 언제나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크기가 다르거나, 기간이 달랐을 뿐.

 

오로지 조직의 문제다. 나는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통 조직에서는 자신들을 점검하기보다는 개인을 점검하기 쉽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회사든, 단체든,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한 사회는 흡사 하나의 세포조직과도 같아서.

서로 어떤 형태로든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세포조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전체적인 점검을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진행하기보다는

그 문제가 발생한 세포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중공업이든, 대학생 동아리든.. 어떠한 조직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니 사실은 '이 곳'이 이상한 것도, '내'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해결해낼 수 있을 만큼의

오너십과, '이 곳'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게 최선이겠지.

 

조직에서는 세포들이 저런 오너십과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든 노력하는 게 답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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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nsun_
생각2013. 11. 10. 23:19


대부분 그렇지만

주위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면서.

모두가 다 나보다 나아보이고,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못나보일 때가 있다.


난 '이거' 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해! 1등은 아니지만 상위 10% 안에는 들걸? 

하고 어떻게든 허세를 부리면서 걷다가도

나보다 약 1g이라도 그 부분에서 나아보이는 사람을 보면 그냥 의욕을 다 잃어버리곤 한다


그 중에서도..

분명히 비슷해보였는데, 어느 순간엔가 나보다 더 업무 역량 등에서 앞서나가는 것 같고

나는 이렇게 멍때리고 있는데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잘 '관리' 하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조급해지는 증상이 가장 심각하다.


사실 그렇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며 인맥을 늘리든, 내 업무 역량이 1g이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든,

사실 내 자신이 비어있으면 그 것은 정말 모래 위에 지은 성만큼이나 부질없다.

순간 대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업무 처리 능력이 나아보일 수 있는 것이고

아무런 뿌리도 없는 말을 주워섬기면서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이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명함을 주고 받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언젠가 그 명함들에게 연락할 명분조차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작성할 때, '내 그릇만큼 돈이 쌓이더라'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에도 핵심을 찌르는 말에 머리가 얼얼해졌었는데 지금은 더욱 뼈에 사무친다.

내 그릇만큼 사람이 쌓이고, 내 그릇만큼 내 능력이 깊어진다.

내 그릇이 10명 분량이라면, 100명을 만나든 1000명을 만나든 10명이 남을 뿐이다.



내 위치가, 내 직업이 나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이 나를 설명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림 감상 공부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인문학 공부를 하고.. 

같은 영화라도 좀 더 고민해보고. 음미해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이 무얼까 이리저리 뜯어보고.

내 생각이, 그 생각이 뿌리가 되어 나온 내 행동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Posted by moonsun_